언제부터인가 이 나라엔 몇 부류의 공인 엘리트 집단이 있어 왔다. 국제정세나 정권이나
경제의 부침에도 상관없이 만년 상류층으로서 서민대중들의 부러움과 시샘을 한 몸에 받아온
소위 “사짜 어른”들. 그 가운데서도 의사, 또 그들이 몸담고 있는 병원에 대한 시중의 불신이
요새 말이 아니다. 참으로 참담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런 세정을 반영하는, 병원의사들에
대한 섹시한 요설 한 토막.

안과의사들은 무슨 돈을 먹고 살까?
-눈먼 돈-
산부인과 의사들은?
-질 나쁜 돈_
 
  이밖에 외과 의사들은‘ 뼈아픈 돈’ ‘간 빼 먹은 돈’, ‘쓸개 빠진 돈’, 돈 돈 돈 등 각 전공별로
시니컬한 돈타령이 한참 이어진다. 자. 그러면, 동전 한 닢, 눈깔사탕 한 알에도  ‘어마 뜨거라’
하는 우리 천진무구한 뜸요법사들은 도대체 무얼 먹고 사나? 세상은 다 뿌린 대로 거두고,
지은대로 간다는데....
 
  필자를 두고 명리학 꽤나 한다는 도사들은 하나같이 “ 드물게 깨끗한 사주”라고 단언했거늘.
허나, 사람이 멍청해 얼렁뚱땅 둘러대는 데는 굼벵이보다 나을게 없는 이 사람이 일찌감치
자복컨데. 60평생  정말 더럽고 치사하고, 냄새나는 곳만 골라 다니며 그 아더메치한(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유치한) 찌꺼기나마 주워 먹고 연명해 온, 구비구비 구지리한 팔자를 면키가
어려웠다. 그 퀴퀴한 여정을 막 끝낸, 지친 몸뚱아리를 이끌고 작년 가을 홍릉의 뜸사랑 강의실을 기웃거렸겠다.
 
  사실 처음 몇 달은 긴가민가했다. 속을 확 뚫어주는 명강의를 매번 접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우리 인체의 산하대지와 골짜기, 지하수맥에 대해 그 흐름의 대강이나마 감을 잡기에는.
너무나.... 까마득한 밤하늘의 별자리를 그리는 듯한 점묘식 강의는 치매1기에 들어서고 있는
골통들로서는  감당하기 벅찬 구구단이었다..
 
  그리고.. 가끔 눈에 띄는 홍롱의 낯선 풍경들.... 뜸사랑은 역시 영리추구가 주목적인 사설 학원에 지나지 않을 뿐인가, 천만에! 뜸사랑은 이 나라, 나아가 지구촌 구석구석 제대로 치유 받지 못하는 억조창생을 위해 천수천안을 베푸는 관음보살, 그 자비의 전당임이 분명할시고......  도시 아리까리.. 밤낮주야 왠 놈의 촌수 이수 셈본에 가뜩이나 뻑적지근한 골속을 한번씩 오다가다 더 헷갈리게 했겠다.
 
  어떻든 꼬박 반년에 걸친 교과서 위주의 이론학습을 대충 마무리 지으면서 가까스로 고급반에
진급, 흰 가운을 걸치고 드디어 창신동 봉사실에서 침관을 잡게 됐다. 여기서 분명히 해둘 것은
오직 침관만 잡았다는 것. 최소한 봉사실적 10회를 넘길 때까지 실제 자침은 언감생심 어림없는
짓거리였다. 하늘같은 선배들, 북두칠성보다 더 우러러 뵈는 교수님들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귀동냥, 눈동냥으로 주워 담는 틈틈이 뜸이나 말고, 향불이나 당기고, 진료를 마친 환자 몸이나 닦아주는 게 고작이었다.

  이제 실습 겸 봉사를 어영부영 절반쯤 채웠을까 말까할 즈음, 어리버리가 주특기인 이 몸도 용기를 짜내고 안간힘을 써서 어느 불쌍한 환자 뱃살 속으로 침을 막 쑤셔 넣는 엄숙한 순간에... 거 뭐라든가 한손으로 침을 대롱 속에 집어넣는 관침법은 또 무슨 우수마발인지 지레 사람 진땀나게 하기 일쑤였다. 도한인지, 자한인지 식은 땀 꽤나 흘리고 있는 바로 그 숨 막히는 순간에... 갑자기 나타나 이 얼뜨기의 옷소매를 잡아채어 문밖으로 끌고 간 저승사자가 있었으니... 그 이름도 거룩한  봉사국장이라. 덕분에 그 후 10여회이상  삽관연습과 혈자리 익히기로 후진기어를 넣고 초발심의 장작패기로 되돌아갈 수 있었으니 저승사자 아닌 이승복자를 만난 줄을 미욱할 손 그제로서야 어이 짐작이나 했으리오. 

  마침내 뜸요법사 시험이 목전에 다가왔다. 우리 79차 반원들의 최대관심사요 걱정거리는 자신들의 합격여부가 아니라 아무래도 어설프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진서비오빠 이 꼰대의 당락 생사 여부였다나. 그래서 목동의 두 진이와 정화, 이 J Sisters 세자매가 현옥이라는 출중한 영재를 모시고 꼰대 특별과외에 나서는 비상대책반까지 가동되는 헤프닝이 여의도 한 자락에서 펼쳐지는 둥 조용하지만 눈물겨운 일대 소동이 벌어진 덕에 이 허망한 늦둥이도 이승 저승을 오락가락한 끝에 그래도 돌아서면 1, 2등 턱걸이로 뜸요법사 명패는 달 수 있게 됐다. 이 어찌 감개무량한 일이 아닐 쏘며 황감 무지한 일이 아닐까보냐.

  옛말에 ‘원님 덕에 나팔 분다.‘더니 이건 정말 ’천사님네들 덕에 날개 달게 됐음‘이다. 아무 쓰잘데없는 이 미련한 늘보를 그래도 어여삐 여겨 한 품으로 끌어당겨준 79차 천사들... 그간 1년여 동안 나는 정말 천당에서, 천상에서 노니는 기분이었다. 79차 뿐 만이 아니었다. 비단 12기 뿐만이 아니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랫말도 있긴 하지만 참말이지 꽃보다 그윽한 향기를 자아내는 선남선녀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토록 정성스럽고, 한결같고, 따사로운지... 정말 아름답고 사랑스런 모습들... 사돈팔촌도 걸리지 않는 남루한 할망구, 할아비들을 땅콩 한 톨 주고받음이 없이 지극정성으로 매만지고, 쓰다듬는 뜸사랑의 선녀들, 선남들... 그네들은 무얼 먹고 살까 그저 눈앞의 것만 챙기는 속진 분분한 이 몸은 내심 염려를 놓을 수가 없었는데... 하지만 그네들은 눈에 띄지 않는 복을 심고 그 복을 거두고, 그리고 그 복을 나누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선인들의 복 품앗이에  이웃사촌의 연분으로 무임승차한 덕이 아니었다면 내 사주팔자에 끼인 먼지와 땟국물을 어느 천 년에  닦고 조일 수 있었을까... 참으로 아슬아슬하고 아뜩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한수 배우겠다고 구당선생님을 찾아 나섰다가 여태 구당선생님의 진면목은 눈치도 못 챈 체 천사들이 노니는 천당으로 직행해... 지은 바 없이 이런 복 누려도 괜찮은 건지, 송구스럽고 두려운 맘 한 편에 없지도 않지만, 비록 아직도 후유전문요법사로서 어찌할거냐!‘ 2006년 한해는 행복
하였네라’ 고래고래 합창으로 외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