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통곡한 이산의 恨
訪北 전봉섭 할아버지, 생사도 모른채 南으로
“아들이 날 만나게 되면 ‘당신이 아버지가 맞느냐’며 따귀라도 때릴지 모릅니다. 그래도 맞아야지요. 나 같은 놈은 사람 축에도 못 낍니다.”
아직도 이산의 한과 눈물은 끝이 없다.
2월24~28일 평양에서는 한국일보 공동주최로 남북역사학자 학술토론회와 함께 한의사, 침구사 등이 참석한 통일침뜸학술토론회가 열렸다.
100여명의 전체 참석자 중에는 주름이 깊게 패인 백발의 할아버지가 있었다. 일행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82세의 전봉섭(경기 김포시 하성면 원산리 242) 할아버지다. 그는 학술토론회에 참가한 자원봉사단체 ‘뜸사랑회’ 교수인 딸 전영옥(51ㆍ서울 강서구 화곡동)씨의 손을 잡고 53년 만에 고향땅을 밟았다.
전씨는 1ㆍ4 후퇴 때 평양시 미림2리 370에 아내 김영삼씨와 아들 명준, 딸 영실을 남겨둔 채 혼자 남하했다. 남쪽에서 1남2녀의 가정을 다시 이루었지만 북의 아내가 살아있다면 79세이고 아들은 57세, 딸은 59세가 된다.
“경찰서장을 하는 친구가 찾아와 인민군이 잡으러 오니 빨리 도망치라고 해서 집에도 들르지 못하고 바로 남쪽으로 갔습니다.” 축구와 씨름선수로 이름을 날리던 전씨는 당시 애국청년단 일을 했다고 한다.
전씨는 그동안 대한적십자사 등 백방으로 북에 두고 온 처자의 생사를 알려고 했으나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했다. 딸은 이산가족 상봉 뉴스를 보며 눈물짓는 아버지가 언젠가는 평양에 갈 날이 올지 모른다며 7년 동안 뜸을 놓아드리며 건강을 보살폈다.
침뜸토론회 참석자들은 26일 고려의학과학원 참관차 전씨의 고향인 미림2리 근처를 지나게 됐다. 전씨의 사연을 들은 북한 안내원은 미림리가 근처에 있다고 말해 주었다. 전씨는 차에서 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누구라도 붙잡고 처자의 소식을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허사였다. 차창 밖으로 흐르는 고향 언저리의 풍경을 바라보며 할아버지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을 수밖에 없었다. 차에 함께 탄 일행들도 눈물을 훔쳤다.
전 할아버지는 자신의 사진과 연락처, 평양 고향집의 주소와 처자, 부모, 두 형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힌 명함을 만들어 갖고 왔다. 북측 안내원과 행사 주최측 사람들에게 건네주며 처자의 생사라도 알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북에 두고 올 때 네 살, 여섯 살이었던 아들딸이 이제는 중년 노인이 됐을 텐데… 이제 돌아가면 언제 다시 고향에 올 수 있겠습니까? 내 죄를 언제 갚을 수 있나요. 걸어다닐 힘이라도 남아있을 때 왔는데….”
할아버지는 28일 서울행 고려항공에 오를 때까지 거의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혹시라도 싶어 가져온 빨간 내복은 주인을 찾지 못하고 다시 짐 속에 들어갔다.
한국일보 2004.3.2 / 한기봉기자 kibong@hk.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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