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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초반 닉슨의 중국 방문 당시 침으로 환자를 마취하며 수술을 하는 모습이 전 세계에 알려진 후 현대의학을 공부한 선진각국의 의사들이 침술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침술을 연구하면서 많은 부분을 현대의학적인 장비로 확인하여 침뜸의학을 설명하고 있다.
최근 뜸사랑의 침뜸교육과정을 마친 의사 중에는 결석증을 침뜸으로 치료하면서 초음파로 결석이 빠지는 것을 직접 확인하면서 진료했다고 한다. 현대의학적인 의료기술로 전통의학을 검증하고 설명을 하는 한 방법으로 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필자는 영동세브란스 병원 진단방사선과 CT촬영실에서 침을 놓고 있었다. 침을 놓은 뒤 그 부위를 CT로 촬영했다. 연세의대 김기황 교수가 촬영을 지휘했다. 뜸사랑의 침뜸교육과정을 마친 김 교수는 이렇게 촬영한 자료로 세미나를 할 계획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현대의학을 공부한 의사들이 침뜸을 배우고 가르칠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이다.
김 교수는 자침한 상태에서 침이 실제로 해부학적으로 어느 위치에 닿는지에 대한 자료를 만들었다. 침을 놓고 나서 김 교수가 보여준 CT촬영 영상에는 놀라운 사실이 나타났다. 경락상으로는 임맥경이고, 방광경의 모혈이 중극이다. 중극에 침을 놓으면 방광질환이나 자궁질환, 전립선염 같은 질병이 잘 낫는다. 그래서 대체로 중극에 침을 놓으면 방광 어디쯤에 침이 닿을 것으로 짐작을 한다. 그런데 실제로 침을 놓고 CT촬영을 해 본 결과 중극에다 놓은 침 끝은 소장의 가운데쯤에 있었다. 소변을 본 후 방광이 비어 있을 때는 소장이 내려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중극에 자침하는 것이 해부학적으로는 소장이 있는 위치를 자극하는 것 같지만 방광 쪽과 연관을 갖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몸에 다른 경로가 있음을 다시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침뜸의학에서는 아픈 곳 바로 그 지점에 침을 놓기도 하지만 전혀 다른 곳에 침을 놓는 경우가 많다. 가령 유방에 병이 있을 때 난소 쪽을 치료한다든가 하는 경우는 바로 우리 몸이 어떤 원칙에 따라 연결이 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인간의 몸의 기능을 ‘오장육부’(五臟六腑)의 활동이라고 생각했다. 오장(五臟)이라고 하면 간장(肝臟), 심장(心臟), 비장(脾臟), 폐장(肺臟), 신장(腎臟)을 말한다. 육부(六腑)는 대장(大臟), 소장(小臟), 담(膽), 위(胃), 방광(膀胱), 삼초(三憔)를 말한다. 이 장부(臟腑)는 현대의학의 해부학적 장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 장부와 밀접하게 관계되는 전체적인 기능을 말한다. 이 장부의 영양을 주관하는 특수한 에너지의 통로를 경락(經絡)이라 하고 특수한 에너지를 기혈(氣血)이라고 한다.
기혈이 경락이라고 하는 길을 통하여서 ‘오장 육부’ 즉 인간의 몸을 움직이게 하고, 이 기혈이 과다하거나 과소함에 따라 인간의 몸의 상태를 좋거나 나쁘게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이 에너지의 통로인 경락의 요소요소에 위치한 경혈을 자극함에 따라 멈추고 있는 에너지를 잘 흐르게 하여 몸의 활동을 정상으로 하려는 것이다.
경혈이라고 하는 말 그것은 의외로 잘 알고 있다. 일상 생활 중에서도 경혈에 지압을 하든가 두들기면 좋다고 말한다.
이 경혈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한 마디로 ‘몸 가운데 급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침뜸의학에서는 이 자리를 전문 용어로서 ‘경혈’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몸의 상태가 안 좋을 때 이 경혈을 누르면 아프거나 기분이 좋은 등의 반응이 나타난다. 거기에 침뜸을 시술함에 따라서 아픔을 없애 주고 내장의 활동을 정리하여 준다. 즉 경혈은 문밖에서 누르는 초인종과 같은 것으로서 몸 밖에서 내장에 통한다.
즉 인체의 체표부위와 내재한 장부 사이는 경락계통에 의하여서 연락되고 인체는 유기적으로 통일된 전체상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경락이론에 기초하면 경락은 기혈의 운행의 통로이고 경혈은 각 경맥상에 분포한 침구의 자극점이다. 또 경혈은 인체의 장부경락의 기가 모여서 출입하는 부위이기도 하다.
경혈과 장부경락은 밀접한 관계가 있어 장부의 기능에 변화가 생기면 경맥을 통하여서 체표의 경혈에 그것이 반영된다. 그래서 외부의 자극도 경혈을 통하여서 장부의 기능활동에 영향을 준다. 즉 생체에 병변이 생겼을 때에 경혈에 침과 뜸을 하면 그의 반응의 전도에 따라서 생체의 각 조직기관의 평형을 조정하여서 병에 대한 저항력을 강하게 하여 정기를 부추겨 사기를 몰아내고 병의 예방과 치료의 목적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경혈을 계통적으로 알아서 연구하는 것이 침구의 임상실천을 높이는데 대단히 중요한 의의를 갖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3천 년 전에 중국의 의자(醫者)들은 이 경혈의 존재를 발견하였다. 즉 인간의 몸은 어딘가 상태가 안 좋게 되면 체표(體表)에 반응이 나타난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리고 이 변화는 다만 변조를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 자극하거나 따뜻하게 하여서 ‘몸의 변조’를 고쳐버린다.
침뜸의학은 이와 같이 경험적 사실에 근거하여 몸의 기능에 대하여 생각하고 처리하였던 것이다. 경혈을 자극하면 기가 활발하여진다. 경혈에 침을 찌르면 엔돌핀이 분비되는 등 여러 가지 실험에서도 경혈의 존재는 명확하여졌다. 그러나 문제도 있다. 즉 경혈이 위나 심장, 신경과 같이 일정한 모양을 갖추고 존재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인간의 신체를 해부하여도 ‘이것이 경혈이다’라고 할 정도로 증명하지는 못한다. 현대 해부학은 사체해부학(死體解剖學)이고 살아 있는 신체에서 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한때 현대의학의 해부생리학에서는 ‘처음부터 경락, 경혈 등은 존재하지 않고, 침과 뜸은 비과학적 치료법이다’라고 단정해버렸다.
그러나 경락과 경혈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떤 경혈을 자극하면 위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사실을 설명할 수가 없다. 경혈자극에 의한 신체적 반응현상이 있는 한 경락과 경혈이 존재한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에 와서는 현대의학에서 침뜸의학을 인정하고 적극 연구하기 시작했다. ‘옛것이 새로운 의학’으로 이제야 겨우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 것이다.
경락 경혈의 존재도 아직 확실하게 증명되어 있지는 않지만 언젠가 과학적으로 실증될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 경혈이라고 하면 무엇인가 몸 가운데 활짝 열린 구멍과 같이 생각이 되나 실제는 다르다.
침구사는 환자의 피부에 손을 대거나 만져서 경혈자리를 곧 아는데 병일 때 각양각색의 변화가 나타난다. 예를 들면 눌러서 아프다〔壓痛〕, 몽글몽글한 덩어리가 손에 잡힌다〔硬結〕, 피부가 들어가서 말랑거리고 차게 느껴진다 등의 변화이다. 이 변화를 찾아내서 환자의 상태와 증상에 따른 치료를 하는 것이다.
또 이러한 경혈도 적외선 영상 장치(사-모 그래프)로 보면 그의 위치가 확실하게 확인된다. 이것으로 보면 인체의 표면 온도가 높은 부분은 적색 계통으로 낮은 부분은 청색 계통으로 나누어진다. 가슴에서 배에 걸쳐 특히 붉은 반점이 되어서 나타나는 점이 경혈의 위치와 일치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혈은 전신에 365개가 있고 또 새로 발견된 경혈을 합하면 약 1천 개나 된다고 한다. 그 경혈은 연락되어서 그룹을 만들고 있다. 이 그룹을 경락이라고 부르고 14선의 길이 되어서 전신을 돈다. 이 14경락이 치료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경락은 예를 들어 철도 선로와 같은 것으로서 경부선, 중앙선, 경의선, 경원선과 같고 경혈은 서울역, 용산역, 영등포역과 같이 생각하면 될 것이다. 병은 그 선로의 흐름이 고르지 못한 상태이다. 그 때, 그 곳에서 가까운 역을 찾아 가서 치료하는 것, 즉 경혈에 침 치료로 기운이 잘 가게 하여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어느 경혈이 어느 병에 효과 있다고 하는 것은 이미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만 똑같은 병이라도 환자의 증상에 따라 증상의 경중(輕重)이나 원인도 각기 여러 가지여서 그에 맞게 처치를 해야 한다. 침뜸을 하는 사람은 환자의 말을 상세히 들어 본다. 이는 침뜸을 할 때는 환자들의 증상을 확실하게 파악하여서 치료에 적절한 경혈을 찾아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적인 방법으로 연구를 한다면 경혈 하나하나가 모두 연구과제이고 이들의 연결구조인 경락현상이 모두 큰 연구꺼리이다. 이미 미국은 침술을 중심으로 한 대체의학 연구예산으로 지난해 한해만도 8천9백만 달러를 배정했다. 각국의 현대의학계에서 침뜸의학 연구에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시작을 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김남수(침구사, 정통침뜸교육원 원장)
( 2002-06-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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