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침뜸 봉사활동을 제안 받았을 때, 우리 자연요법과 학생들은 이 활동을 우리의 일로 받아 안았다. 아직은 우리가 주최 단체도 아니고, 더구나 침대 보조역할에 그칠망정 이 일이 침뜸의학의 대중화에 기여하리라는 확신에서였다. 게다가 이만큼 훌륭한 경험이 또 어디 있으리요! 아울러 구당 김남수 선생님을 직접 만나 뵐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5월 17일 아침, 허겁지겁 챙겨 입고 침뜸 봉사 행사장인 ‘송원관’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행사장에 도착해보니 벌써 흰 가운을 입은 봉사단원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고 환자 접수대 앞에는 손님들이 60석이 넘는 대기석을 꽉 메운 체 붐비고 있었다. 50개 침대 역시 빈자리 하나 없이 환자들이 엎드리거나 드러누운채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서울에서 버스를 대절하여 광주에 내려온 뜸사랑 봉사단원들은 잘 준비된 일사불란함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곧이어 삼삼오오 모여든 자연요법과 학생들은 접수대, 환자안내, 침대보조 등의 자기 위치로 빠르게 배치되었다. 그렇게 5ㆍ18 침뜸 봉사활동은 무르익기 시작하였다.
구당 김남수 선생님. . .
그런데 저만큼 사진으로 뵌 듯한 할아버지 한 분이 분주히 움직이고 계셨다. 바로 구당 김남수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이 침대 저 침대를 오가시며 침뜸시범을 보이시는가 하면, 금세 접수대의 상황을 살피시곤 하셨다. 그러다 환자 대기석의 뭇 사람들 앞에서 즉흥 연설(?)을 하셨다.
“나도 매일 뜸을 뜹니다. 무극보양뜸만 꾸준히 떠도 건강은 틀림없어요.”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은 구순에 이른 연세에도 불구하고 송원관 강당 저 뒤편까지 음성이 전달될 정도였다. 잠시 후 선생님은 어느 틈에 봉사단원들 속에 섞여 이 사람 저 사람의 사진 모델이 되고 계셨다. 봉사활동 이틀동안, 구당 선생님이 피로에 지쳐 쉬시는 모습을 나는 보지 못했다. 흡사 철인이셨다.
구당 선생님은 우리 자연요법과 학생들에게 이러 저러한 관심을 보여 주셨다. 그래서 맞춤한 때를 봐서 선생님께 말씀 드려보았다. “추후에 저희들이 선생님을 광주로 모실 기회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때는 저희 학생들과의 오붓한 시간을 가져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이러한 우리의 건의에 선생님은 봉사활동을 마친 직후 즉흥 강의로서 답해주셨다. 다음은 선생님 강의내용중 몇 가지 요점만 옮겨본 것이다.
“배워서 남주자. 우리 침뜸 술자들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 무극보양뜸은 거르지 말고 꾸준이 떠라. 모 대학의 한의학과에서 침구학을 가르치지 않아 망쳐버린 사실이 대단히 안타깝다. 우리 민족 의학인 침구의학은 되살려야 해! 그래서 ‘침구사’ 제도는 반드시 부활해야 하는거야... 2005년 의료시장 전면개방에 대비하자!”
선생님 스스로도 이틀 동안의 강행군에 피곤하실텐데 이렇게 특강까지 해주시다니... 그것도 송원관이 울리도록 기력있는 음성으로... 우리 시대 살아있는 신화! 한국 침뜸의학의 진정한 대부! 구당 선생님 부디 만수무강 하시옵소서...
그리고. . . 뜸사랑 봉사단원들
뜸사랑 봉사단원들은 마치 잘 훈련된 용병들 같았다. 한국 침뜸의학의 선두주자들인 이들은 사뭇 진지함으로 환자들을 대했다. 흰 가운을 입고 침대마다 1인씩 배치되어 환자들을 돌보았다. 가만 보니 봉사단원들도 그 구성이 다소 다양함을 알 수 있었다.
광주 지부장을 맡고 계시는 김병태 교수님(송원대학)을 필두로 홍교수님같은 멋진 중년신사에서부터 정갈한 모습의 윤교수님, 천사의 모습을 한 조교수님, 현직 의사, 광주 모대학의 오교수님 그리고 가정주부들에 이르기까지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뜸사랑 봉사단’을 이루고 있었다. 다양한 연령과 출신성분을 지녔을망정 이들이 침뜸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오로지 하나일 것이다.
첫날 봉사활동을 마치고 나자 김원배 학과장님이 내게 지시하기를, 봉사단원들을 도청 앞 금남로까지 안내하라는 것이었다. 5ㆍ18 침뜸 봉사를 위해 광주를 방문한 이들은 말로만 듣던 5ㆍ18이 무엇이며, 이곳 광주 사람들은 매년 5월이면 5ㆍ18을 어떻게 맞이하는지를 알고 싶어했던 것이다. 차없는 거리로 조성된 금남로를 훑으며 도청 앞으로 걸어 올라가는 이들을 보며 5ㆍ18과 침뜸이 만나고 있는 또 하나의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시내 모처에서 이들을 태운 버스에 함께 올라타고 학교로 들어왔다. 이른 아침 식사를 달게 마친 봉사단원들은 봉사국장님의 인솔하에 즉각 이틀째 봉사에 돌입하였다. 전날보다 손님이 많지는 않았지만 뜸사랑 봉사단원들의 진지함은 변함이 없었다. 이윽고 작별의 시간은 다가와 이들을 태운 버스는 송원대학을 떠나 서울로 향했다. 봉사단장이신 구당 선생님과 뜸사랑 봉사단! 이들은 틀림없이 한국 침뜸의학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것이다.
침뜸의학의 샛별. . . 광주 송원대 자연요법과
우리 자연요법과는 이번 5ㆍ18 침뜸봉사에서 보조자였다. 그러나 내년엔 우리도 어엿한 술자가 되어 부모님과 일가친척들을 모시고 우리의 솜씨를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자연요법과는 현재 1학년 뿐이다. 전국 최초로 이곳 광주 송원대학에 자연의학 관련학과가 신설된 것이고 그 주인공들은 우리들이다. 우리 학생들의 구성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나이는 19세에서 62세까지 편재되어 있다. 지역적으로도 서울, 경기, 부산, 울산, 전남, 전북 등 다양한 곳에서 인재(?)들이 모여있다.
우리 학과의 CEO는 김원배 교수님이다. 계측제어 공학을 20년 넘게 하시다 그 모든 것을 청산하고 침뜸의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한국 침뜸의학의 미래를 걸머질 한 축으로 나선 것이다. 봉사활동 중에 쓰러진 한 여학생이 구당 선생님의 치료로 회생하였을 때, 김교수님이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보았다. 내가 보기에 교수님은 휴머니스트이다. 이 김원배 학과장님을 필두로 7분의 교수들이 진용을 갖추었고 여기에 학생들이 몸체를 이루어 우리는 하나의 팀웍으로 짜여진 팀이다.
우리들은 빈약한 침뜸 기술일망정 봉사기간내내 진지했고 열정적이었다. 그리고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여러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나이 드신 환자들을 다수 접하였고 유능한 술자들의 시술을 직접 목도하였다. 그리고 다수의 봉사단원들과 교제할 수 있었다.
몸은 피곤했을망정 매우 의미 깊은 이틀 동안의 봉사 일정이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그것은 침뜸의학이 명실상부한 합법적 의학의 한 축으로 올곧게 서는 것이었다. 한약과 더불어 동의학의 또 하나의 산맥이었던 침뜸의학.... 그러나 이제는 허리가 끊어져 자칫 그 본질마저 훼손당하고 있는 침뜸의학의 위기가 아닌가? 이제는 바로 세워야 한다.
의료 서비스를 받는 대중들을 위해서도, 끊어진 침뜸의학의 명맥을 되살려보려는 구당 선생님같은 선각자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도, 한약분야와 침뜸분야라는 확실한 전문화를 통한 동의학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도 그리고 침뜸의학에 인생을 걸고 뛰어든 이 시대의 침뜸의학도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도 한국 ‘침구사’ 제도는 부활되어야 한다. 여기에 송원대 자연요법과의 존재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5ㆍ18 침뜸 봉사활동을 겪으면서 나와 같은 우리, 우리와 같은 여러 침뜸 의학도들을 만났다. 그리고 구당 김남수 선생님을 만났다. 그리고 나서 우리의 할 일이 무엇인가 훨씬 분명해졌다. 실력을 갖춘 침구사! 이 시대의 진정한 ‘술자’야말로 우리를 구원할 것이요 가난한 의료대중들을 살릴 것이다. 더 나아가 이 나라 민족사에 침뜸의학을 주류의학의 한 산맥으로 우뚝 올려 세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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