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朴仁虎/동아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생물학과 교수
침구학은 경락과 수혈에 어떤 자극을 가함으로써 인체에 들어온 사기(邪氣)를 없애거나 혹은 인체의 방어기능을 증진시킴으로써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과 원리에 대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침구학이 특히 중국의 1958년 대약진 시기에 외과 수술에서 침을 이용하여 통증을 없애는 기술이 공개되면서부터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그로부터 획기적인 재도약의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그 후 과학적 실험법, 서양의학과의 접목 등을 통한 현대 침구의학의 발전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침구학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5.16 이전까지는 국가에서 주관하는 침구사 자격시험을 통하여 침구사가 배출되었는데, 5.16 군사정부 내 보건의료 담당 관계자의 무지와 전통의학을 경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서 관련법이 삭제되어 침구사 자격시험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5.16 이전에 실시되던 침구사 자격시험제도를 통해 취득한 침구사 자격증 소지자(지금은 많이 돌아가셔서 전국적으로 몇 분 남지 않았지요)와 그 후에 설립된 한의대 졸업생만이 합법적으로 침구시술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침구의 달인들까지도 비공식적으로 환자를 도와주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의사와 침구사는 다른 것
참고로 한의사와 침구사는 분명히 서로 다른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NCCAOM에서 수여하는 자격증은 아래와 같이 두 종류가 있습니다.
1. NCCAOM Certification in Acupuncture(Diplomate in Acupuncture)
2. NCCAOM Certification in Chinese Herbology(Diplomate of Chinese Herbology)
앞의 것이 침구사이고 뒤의 것이 한의사입니다. 즉 미국에서 인정하는 한의사 자격은 'Diplomate of Chinese Herbology'인데 이 자격을 가지고서는 침구시술을 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미국에서 침구시술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Diplomate in Acupuncture'를 취득하여야 합니다(www.nccaom.org 참조). WTO 협약에서도 한의사와 침구사를 구별하고 있습니다. 침구사는 탕약을 위주로 한 현재의 한의사와 다른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하루 빨리 관계 법령을 정비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몸을 통해 체득해야
사실 침구치료는 오랜 기간의 경험을 바탕한 침구사에 의해서 시술될 때에만 그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특히 침구술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상당한 침구시술 능력을 가진 전문가에게서 1 대 1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몸에 적어도 수천 번 이상 직접 맞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직접 자신의 몸에 침을 수천 번 이상 맞아보아야 비로소 침감(鍼感), 즉 득기(得氣)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십 명의 사람들을 한꺼번에 모아놓고 일주일에 서너 시간에 서너 달 정도 교육으로 침구술을 습득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경혈도에 나와있는 치수나 위치를 바탕으로 수혈을 찾아 침자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넌센스라는 것을 침을 한번이라도 맞아본 사람이면 누구나 인정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은 많은 사람들이 전국에 산재해 있는 침구의 달인들을 찾아서 비공식적으로 침구시술의 실제를 배우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침구사 제도 부활해야
침구사 제도가 없다고 해서 침구술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침구학에 대한 관심은 고등학교 3학년 시절에는 갖지 않다가 나이가 들어서 갖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리고 또 서양의 의학과 약학을 공부하신 의사나 약사 분들이 나이 들어서 동양의 침구시술을 병행하고 싶은 욕망이 생길 수 있는데, 그럴 경우 그들에게 한의과대학에 다시 진학하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중국이나 미국, 일본 등지에서도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침구사 자격증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고 합니다. 침구시술자나 침구의사에게서 사사한 후 일정한 자격시험(이론 및 실기)을 보게 하여 자격증을 주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문화혁명 당시 침구의학을 비과학적이라거나 미신이라고까지 혹평하여 금지시킨 일이 있었지만, 침구의술의 탁월한 효험을 믿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그 맥이 수십년 수백년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기 때문에 그런 일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제는 중국이 세계적인 침구의학의 종주국으로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미국에서도 수십 개의 침구전문교육기관이 설립되어 있습니다.
침구술 공부는 아무리 제한하더라도 아픈 사람과 침구의 달인이 존재하고, 침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 한 계속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불법적인 상태로 방치하는 것보다는 어떤 형식으로든 그들의 소양을 국가가 확인하고 주기적으로 재교육해야 하며, 그들의 시술활동을 감시하여 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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