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정개요
▶ 명 칭 : 2003 한국대학산악연맹 쿰부히말훙치원정대
▶ 기 간 : 2003. 3. 18 - 2003. 5. 8(52일간)
▶ 대 원 : 본인외 8명(구경모원정대장, 유철목, 김전암, 김성호, 정찬일, 김승구. 정희식. 이윤지대원)
■ 3월 18일 카투만두 - 뜸사랑 봉사요원으로 히말등정 시작
오늘 나는 홍콩을 거쳐 네팔왕국의 수도인 카투만두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지난 2월 부친상을 당해 방황을 많이 하던 내게, 평소 고교동창회 회보를 만들며 항상 부러워했던 산악인 구경모라는 동기에게 “2003히말훙치원정대”봉사요원으로서 참가제안을 듣고 망설임 없이 아내의 허락을 얻어 원정대팀에 합류했다.
히말의 관문인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시내는 무질서의 극치다. 우리나라에선 폐차장에서도 볼 수 없는 60년대 잡동사니 차들과 오토바이, 그리고 자전거들이 뒤엉켜 사람들 사이로 곡예운전을 한다. 노점상들이며 풍선을 파는 노인들이며, 릭샤(자전거 뒤에 승객좌석을 앉힌 대중교통수단)사이로 구걸을 하는 꼬마 등,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반세기정도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다.
원정대팀은 여기 카투만두 “빌라 에베레스트”라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약 두 달간의 원정살림을 위해 일주일간 준비기간을 갖는다. 히말원정으로 네팔을 여러 차례 왔었던 구경모대장의 소개로 우리나라 대사관 직원 정용관씨를 만나 우리 “뜸사랑”을 소개하고 해외봉사의 가능성을 타진하니 매우 반가와 한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 네팔의 낙후된 의료현실로 보아 우리 침뜸이 가장 적합한 봉사처란다. 작년 한의사들로 구성된 의료봉사팀이 많은 인기를 얻고 돌아갔지만 한약처방이 지속적으로 보급되지 못해 한계를 느꼈다고 하신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침뜸봉사야말로 증상별로 뜸자리 잡아주고 지속적으로 뜸만 보급해 준다면 얼마나 경제적이고 유익한 봉사인가.
네팔의 의료현실은 실로 심각 그 자체다. 그나마 카투만두 같은 대도시에 약간의 의료시스템이 있을 뿐 히말 같은 산악도시로 가면 그들 나름의 간단한 민간처방만 있을 뿐이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선교사분들 중 한 목사님은 원정대나 트래킹 여행객들이 돌아갈 때 남는 상비약만 모아 산악오지 주민들에게 보내는데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의료봉사역할이라고 한다.
■ 3월 21일 카투만두 - 견비통 무극보양뜸으로 완쾌
한 일주일 침을 놓아 손이 근질근질 하던 참에 내가 의료봉사요원으로 침뜸을 할 줄 안다는 사실을 안 건국대팀 김동현대원이 견비통을 호소한다. 동계훈련 때부터 생긴 증상이란다. 몸이 무척 건장하여 우리 무극보양뜸만으로 거뜬하게 완쾌시키니 입이 바가지만큼 되어 투숙객들에게 내 자랑만 하고 다닌다. 자 이제 내일이면 드디어 본격적인 원정을 위해 21인승 경비행기로 루크라를 간다. 과연 우리의 침뜸이 우리 등반팀들의 고소증에 얼마나 도움을 줄지 걱정이다. 그간 뜸사랑에서 함께한 원장님과 고급4기동기들, 여러 교수님들의 모습이 필름처럼 지나가면서 잠을 설쳤다.
■ 3월 23일 카투만두- 루크라
드디어 짐을 꾸려 쿰부히말의 관문인 루크라행 21인승 경기비행기에 불안한 마음으로 몸을 실었다. 출발에 앞서 그래도 비행기라고 스튜어디스인 인도풍 미녀 한명이 민속의상을 입고 약솜 조금하고 알사탕을 하나씩 준다. 어리둥절했지만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쌍발 경비행기라 정말 너무 시끄럽고 많이 흔들리기 때문에 그들 나름대로의 서비스이리라. 장난감 같은 비행기가 신기하게도 뜨긴 뜬다. 비행기 창문 아래로 하얀 모자를 쓴 히말산군(山群)의 병풍처럼 둘러친 모습을 보니 정말 하늘나라로 날아가는 느낌 그 자체다. 그것도 살아서.
■ 3월 24일 팍딩 - 남체바잘
해발 2천8백27미터의 루크라에서 하루를 자고 다음날 해발2천6백미터의 팍딩을 거쳐 고도 800미터를 더 올려 남체바잘로 전진한다. 해발 3000미터를 지나고부터 드디어 고소를 느끼기 시작한다. 더구나 끝없는 길을 오르고 또 오르는데 진눈깨비까지 내려 앞을 가린다. 정말걱정이다. 따라나선 것이 얼마나 후회스러운지 모른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참아야한다. 비전문가지만 원정대를 침뜸봉사한다고 따라와서 뒤쳐져 버리면 친구인 대장 꼴이 얼마나 우습게 되겠는가. 그래 이를 다시 악물고 뒤쳐지지 말자. 고도를 올릴수록 진눈깨비는 다시 폭설로 바뀐다.
시인 정현종님의 “끝없는 고통의 축제”란 이런 것일까? 어! 이런 숨이 턱 막힌다. 5미터 오르고 5분 쉬고, 또 3미터를 걷고 10분 쉬고, 그러나 원정대팀 사이로 짐꾼포터들이 맨발슬리퍼로 한 걸음 걸음 오르는 모습에 그만 겸손을 느낀다. 이렇게 죽을힘을 다해 오르니 드디어 해발3천4백36미터의 남체바잘이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유철목, 김성호 두 대원이 장시간 눈보라에 치쳐서 고소증상과 감기증상으로 쓰러졌다. 두 대원을 모두 무극보양뜸을 잡고 기본혈유침을 해주니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며 잠이 들었다.
■ 3월 25일 남체바잘 - 고소증 치료혈을 찾다
오늘 남체에서의 아침, 드디어 문제가 생겼다. 원정경험이 있는 한, 두 명만 빼놓고 모두 고소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고소증이란 높은 산의 산소부족으로 오는 병으로 처음에는 구토를 느끼고 다시 바늘로 지르는 듯한 편두통을 느낀다. 심하면 뇌수종이나 폐수종이 일어나 목숨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다. 쿰부히말의 관문인 남체바잘에서 본격적인 고소증에 시달리게 되는데 여기서 적응이 어려우면 더 증상이 깊기 전에 서둘러 아래로 내려가야 된다. 무조건 내려가야 살 수 있다. 걷기 힘들면 미화 3,000불인 헬기라도 불러 빨리 내려가야 산다.
작년에 영국 비행기 조종사 한명이 여기 남체바잘에서 고소증을 무시하고 더 오르다가 미쳐 헬기도 못 부르고 그만 죽었단다. 가슴에 5000불을 안고. 산을 너무 자만한 결과리라, 그것도 히말의 산을. 어쨌든 나도 오늘부터 심한 고소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 분명 무극보양뜸과 침으로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을 꺼야’ 뒤척이던 잠을 털고 일어나 우선 침으로 태충, 족삼리, 양릉천, 기해, 관원, 중완을 자침하고 앞쪽 보양뜸 후 기다리니 증상에 변화가 없다. 순간 합곡, 내관을 추가로 자침하니 구토증상이 없어진다. 다시 풍지, 예풍를 심자하고 한 20여분 심호흡을하니 어지러움증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아하 그래 요거구나’ 무극보양뜸에 합곡, 내관, 풍지, 예풍심자라. 비로소 치료 혈자리를 찾아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나 ‘오늘은 어차피 휴식시간을 하루 더 갖는다니까, 내일 다시 고도를 높여 증상이 나타 날 때 본격적으로 시술하리라’ 마음 먹고 뒤척이는 잠을 다시 청한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깊은 잠을 못자고 꿈이 많아진다. 잤다고 생각되어 시계를 보면 겨우 시간 반 정도 지난다. 신문혈에 피내침을 하니 조금 긴 잠을 잘 수 있었다.
■ 3월 27일 포체탕가 - 마체르모
오늘의 여정부터는 이제까지의 고소증상보다 좀더 색다른 증상이 느껴진다. 아마 해발 4000미터가 넘어서 그런지 호흡이 무척 곤란해진다. 머리는 두통인지 무척 무겁게 느껴진다. 침뜸으로 대원들 치료전에 나부터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십선따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홍일점 이윤지를 불렀다. 그녀 역시 초죽음 상태라고 정희식대원이 대신 왔다. 십선혈을 알려 주고 뒤에 뜸을 뜨게 하고 조금 누워있으니 나아지는 것 같다. 아침부터 두통을 호소하던 김성호를 불러 무극보양뜸을 뜨고 합곡, 풍지, 예풍, 태양혈에 유침을 하니 신기하게도 두통이 사라진다.
비로소 우리 침뜸에 확신을 갖고 다시 이윤지의 방으로 가서 진단을 해보니 고소증도 문제지만 감기증상이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거기에 생리까지 한단다. 도대체 21살의 여자애가 무슨 고생을 하려고 여기까지 따라왔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하는 무극보양뜸을 무척 잘 참는다. 폐유에 다장을 하고 삼음교에 피내침을 붙였다. 고통을 호소하는 다른 대원들 역시 무극보양뜸에 풍지자침을 하고 재웠다.
■ 3월 28일 마체르모 - 고쿄
우리의 쿠커 펨바가 차마시라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장기간의 원정을 위해서 한국요리 전문요리사를 따로 데려 간다) 다음날 모두들 조금은 나아진 얼굴로 나왔다. 아 정말 위대한 침술이다. 휼륭한 무극보양뜸이다. 무극보양뜸 덕에 어제까지 아프던 머리가 훨씬 나아 졌다며 대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떠든다. 마체르모에서 고교까지의 길이 참 예쁘다. 멀리 에메랄드빛으로 흐르는 강 건너에는 에베레스트쪽으로 넘어가는 촐라패스길이 보이고 고쿄쪽으로 한 시간 남짓 올라서니 계곡이 시작되면서 호수가 보인다. 그림같이 펼쳐지는 풍경 덕으로 대원들 모두 고소를 잊고 즐겁게 걷는 듯싶다. 고쿄에 도착하니 잠자리도 좋고 음식도 맛있고 며칠 쉬었다 갔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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