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16
◎ 이름:사무국 (jungyang@orgio.net)
◎ 작성일:2000.4.22(토) 14:35
◎ 조회:586 회
김남수 선생 인터뷰 기사
“의술은 돈벌이 수단아니다”
85세‘현역’침구사 / 김남수 할아버지
서울 동대문야구장 건너편에는 매일 새벽 사람들이 줄을 선다. 김남수 할아버지 소문을 듣고 전국 각지에서 침 맞으려 몰려든 사람들이다.
다급한 환자들이 찾아와 애원하는 통에 크고 작은 실랑이가 자주 일어난다. 전날 밤 미리 예약을 하고 인근 여관으로 간 사이 새벽에 온 사람들이 새로 선착순 명단을 만들어서 이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 지기도 했다.
김남수 할아버지는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침구를 찾는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침과 뜸(灸)의 효과가 대단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62년 침구사 양성제도를 폐지해 버렸다. 자연히 이제는 침구시술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침구사는 김남수 할아버지를 포함하여 1백여명밖에 안된다. 이들 대부분 고령이어서 실제로 시술하는 침구사는 손으로 꼽을 정도. 무형문화재로 지정해야할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김 할아버지는 86세의 고령에도 아침 7시부터 저녁 5시까지 환자들을 치료한다. 하루 50명. 그 이상은 어렵다. 일요일에도 오전에는 환자들에게 시술을 한다. 월요일과 목요일은 사회복지기관의 노인들이나 택시운전사 등을 찾아 나선다.
인체는 소우주 균형이 건강
가장 좋은 의학은 스스로 건강하게 사는 것. 현대의학은 그 반대의 경향을 띠고 있다. 약물이나 의료도구에 의존하여 살도록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나약한 인간을 만들어 버린다. 암이나 불치병에 이르면 첨단기술을 갖춘 병원이 환자를 절망에 빠뜨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마치 예언자처럼 몇 달밖에 살 수 없다고 냉랭하게 선언하고, 그들 예언은 대부분 적중한다. 삶의 의욕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종합병원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죽음을 맞이하기 어렵다.
동양의학에서는 인체를 경혈을 통해 기운이 흐르는 소우주로 본다. 건강은 평소의 양생에 달려 있다.
양생은 조심(調心) 조신(調身) 조식(調息) 조식(調食)이다.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다스리고 호흡을 다스리고, 먹기를 다스리는 일이다. 건강하게 살려면 명상으로 마음을 돌아보고 올바르게 생활해야 한다. 나와 이웃과 자연이 하나로 통하는 될 때 마음과 몸과 호흡이 온전한 건강상태가 되고, 종내는 삶과 죽음을 하나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병이 났을 때는 일침이구삼약(一鍼二灸三藥)으로 다스린다. 김 할아버지는 이웃의 병을 치료하는데는 침구가 세계에서 가장 으뜸가는 의술이라고 말한다.
“세계보건기구는 지난해 1월 침구로 3백여종의 질병이 치유된다고 연구 발표했습니다. 가짓수만으로
도 최고의 의학이라 할 수 있지요. 또 여기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병원에서 치료도 해보고, 양약 한약 다 먹어보며 갖은 방법을 쓰다가 마지막으로 들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치료를 해보면 낫습니다. 부작용도 전혀 없고, 치료 후에 후유증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이상의 의술이 어디 있겠습니까?”
김 할아버지는 음양과 오행의 균형이 깨진 상태를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본다. 병이 나면 침과 뜸으로 이 균형을 회복하게 하는 일이 급선무다. 수술은 균형을 파괴하는 일이라고 보기 때문에 최후의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
그런데 요즈음 우리의 보건의료를 보면 완전히 거꾸로 된 상태이다. 출산부터 수술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평생이 약에 의존하는 생활로 이어진다. 안되면 몸에 또 칼을 대야 한다. 한의도 거꾸로 되어 가기는 마찬가지. 의술의 으뜸과 버금인 침과 뜸은 뒷전으로 미뤄놓고, 세 번째로 치는 약에 치중한
다. 순전히 돈벌이 때문이다.
부작용 없는 으뜸 의술
“옛날에는 침놓는 사람이 의원이었습니다. 침구사는 종합치료를 할 수 있는 이동병원이었지요. 왕진요청이 있으면 논두렁 밭두렁 달려갔습니다. 현대 병원은 여러 가지 장비와 약이 필요하지만, 침구사는 침통 하나만 달랑 들고 다녔습니다. 진맥을 하고 침으로 치료를 하면 바로 효과가 나타났지요.
침으로만 해서 어려운 병은 우선 응급치료를 한 후 어떤 약을 지어먹으라고 처방을 내려주고, 약을 지어먹도록 했습니다. 의약분업이 이루어져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의서인 「황제내경」에 보면 폄석(貶石-돌로 만든 침)은 동방에서 왔다고 전한다. 또 23년에 함경북도 웅기 패총에서 돌침과 뼈침(骨針) 등을 발굴, 기원전 3천년대의 것으로 고증함으로써 침술의 종주국이 우리나라임을 입증하고 있다.
이렇듯 5천년이상의 역사를 가진 최고의 의술이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천시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침구사 양성제도가 아직도 부활되지 못한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침구가 돈벌이 수단으로는 썩 적절치 못한 의술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옛날부터 ‘약값은 있어도, 침 값은 없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침술의 가치가 무한하다는 뜻과 돈벌이 수단이 되서는 안 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침은 약과 달라 한 구멍 한 구멍에 심신과 기운을 다 모아야 하기 때문에 물욕이 있으면 정신이 흐트러져서 병을 제대로 못 고친다는
뜻입니다.”
지난해 세계침구사협회 한국대표단의 일원으로 세계보건기구 총회에 참석했을 때 김 할아버지는 중요한 사실을 하나 새삼 확인했다. 다른 나라 보건의료는 병 고치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돈벌이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는 병 치료에 목적을 두다 보니까 침구학을 받아들여 발전시키고 있는데, 정작 침구의 종주국이라고 하는 한국에서는 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 중국 일본에만 있던 침구가 전세계적으로 퍼져, 세계침구연합회에 가입한 나라만도 이제 142개국이다. 세계보건기구도 지난해 1월 세계침구사연합회와 공식관계를 수립, 침구술이 인류 건강향상에 기여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침구사 양성제도를 폐지한 이후 70년대 중반까지 13년 동안 공식적으로는 어디에서도 침구를 가르치는 곳이 없었습니다. 한의대에서도 침구학 강의를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한의사들이 다 침구를 배웠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한의사들이라고 침구시술할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침구부활 시민손에 달려
침구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의사들도 솔직히 인정한다. 그나마 젊은 한의사들 중에 침구 시술을 하는 사람이 있지만 약에 비하면 비중이 턱없이 낮다. 별로 이윤도 남지 않을 뿐만 아니라, 침은정성을 다해 기운을 써야하기 때문에 하루에 한 사람이 치료할 수 있는 환자수는 몇십명 정도다. 한의원 운영을 하여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는 침보다 약을 권할 수 밖에 없게 되어 있다.
현재 무면허 침구사가 30-50만명이나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침구가 잡초의 생명력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김 할아버지는 최근 일각에서 한방전문의제도를 추진하면서 침구전문의를 만들려고 하지만 이것은 침구를 한의사들이 독점하려는 것이라며 단호히 반대한다. 한의원 시스템에 들어가서는 침구술이 국민을 위한 의술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옛날부터 돈 받지 않고 침구시술을 해 줄 수 있었던 것은 재료비가 안 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다른 생계수단으로 먹고살며, 이웃이 아프면 침통 하나 들고 가서 바로 시술을 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침구사 제도를 부활시키면 보건의료정책의 숙원인 무의면(의사가 없는 면)은 물론 무의촌까지 없앨 수 있습니다. 물론 의사도 한의사도 침구를 배워 침구사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김 할아버지는 침구사제도 부활요구가 이권싸움으로 비치게 될까 우려한다. 워낙 열세인데다 보건의료제도 정책결정권자들이 대부분 이들 의료인인 점을 감안하면 다른 의료인들과 힘 겨루기로 제도를 바꿔낼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이웃의 병고를 자신의 돈벌이 기회로 이용하려는 사람이 늘어나게 해서는 안됩니다. 침구를 되살리고 죽이는 것은 이제 시민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인간이 소우주인 것을 치료로써 증거해 내는 이런 전통의학에서 우리는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오늘
병들어 만신창이가 된 우리사회 그 자체를 치유하는 단서를 찾으려는 노력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
서 김남수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더 소중하다. <손중양 기자>
(지킴이 1999년 5월 17일 ∼ 1999년 5월 23일 : 제28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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