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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고려의학과 대체의학의 만남

전세일 박사(포천중문의대 대체의학대학원

2004.04.06 00:00:00 화

전세일|포천중문의대 대체의학 대학원원장
특집│평양 현장취재·제1회 통일침뜸학술토론회
북 경혈예보진단체계,
남 화상침치료 연구성과 발표

"남북의 침뜸 교류를 모색하는 사상 첫 토론회가 평양에서 열렸다.
2월 26일 제1회 통일침뜸학술토론회에서 남북 전문가들은 무슨 얘기를 나눴나?
남측 대표로 논문을 발표한 전세일 박사로부터 토론회 회고와 북의 의료시설 등을 둘러본 소감 등을 들어본다."

평양에서 열린 이번 통일침뜸학술토론회는 여러 면에서 색다르다. 우선 회의 장소가 평양이다. 둘째 남북 학자들의 합동 학술대회이다. 셋째 의학 학술대회가 역사학술 대회와 병행해서 치러졌다. 넷째 침·뜸을 중심으로 한 전통의학이 주제였다. 이러한 성격의 남북 합동 세미나가 적어도 전통·민속의학 분야로선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이다.

고려의학과학원을 가다
이번 남북 학술 토론회는 남북학술교류협회(준)가 주관하였고, 현재 국내외적으로 관심이 높은 '일제 약탈문화재 반환을 위한 학술토론회'가 주 세미나였고, 전통의학 학술토론회는 부차적 세미나였다. 이번 방북단 90명 중 전통의학 관련 참석자는 25명이었다.

공식적인 첫 남북 합동 학술 토론회이기 때문에 전통·의학 분야의 남북 학자들이 만나서 서로 사귀고, 앞으로 지속적인 학술 교류의 길을 같이 모색 해 보며, 얼굴을 맞대고 제2회 3회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합동 토론회에 대한 방안을 논의 해 보자는 것이 기본 의도였다.
이번 의료인 방북단은 작은 규모로 구성하였고, 그렇게 기획 진행 된 것이었다. 따라서 침·뜸 학술 토론회의 전반적인 규모나, 회의 시간, 참석 인원, 발표 논문 수, 방문 의료시설의 수 등은 계획했던 것보다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매 순간을 살아라"는 생활 철학을 가진 나로서는 이번 방북이 한마디로 감격적이었고, 희망적이었고, 보람된 일이었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그렇게 멀리 느껴졌던 동족 학자들끼리 마주 앉아 환하게 웃으며 정담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이 감격스러웠고, 남북 학자들이 힘을 합해 노력함으로써 세계 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 할 수 있다는 공동 잠재력을 확인한 것이 희망적이었다. 앞으로 서로 의논 해 가며 지속적 학술교류를 하자는 의견을 모은 것 또한 보람된 일이었다.
방북 3일째인 2월 26일 목요일 오후에 우리 의료 방문단 일행 25명은 고려의학과학원을 방문하였다. 고려의학과학원은 전통의학 분야에 있어서 종합연구 기지, 간부 양성 기지, 종합적인 고려의학 치료 봉사 기지, 국제 과학교류 기지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4층으로 되어 있는 과학원 건물의 연건평은 1만 5000여 평방미터이며, 1층은 외래 치료 봉사 실이고, 2층에서 4층까지는 여러 연구소가 들어서 있다. 고려의학과학원의 연구기관에는 침구연구소, 내과연구소, 외과연구소, 체질연구소 등 4개의 연구소가 있고, 고려의학 기초이론 연구소, 임상 검사소를 포함한 6개 분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또다시 11개 세부 분야로 나뉘어져 있다. 현재 이 과학원에는 400여 명의 연구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이 중에 100여 명의 임상의가 포함되어 있다. 과학원 부원장 현철 박사는 "현재 가지고 있는 연구동 전체와 같은 규모의 연구동을 2개를 더 추가하는 증축이 계획되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남북 각각 두 편씩 논문 발표
제1회 평양 통일침뜸학술토론회는 바로 이곳 고려의학과학원에서 열렸다. 우리 방북 의료인과 북측 관계자를 포함해 60여 명 정도가 참석해 토론회를 진지하게 지켜봤다.
현철 부원장은 "우리 선조들이 수 천년을 내려오면서 창조하고 발전시켜온 침구술은 우리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 중 하나"라며 "민족의 자랑인 침구술을 더욱 발전시켜 세계에서 으뜸가는 의술로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토론회를 찾은 남측 인사들을 환영했다.
환영사에 이어 곧바로 4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북측에서 2편 그리고 남측에서 2편이었다. 북측 발표에 이어 남측의 발표 2편이 이어지고 마지막은 북측에서 마무리했다.
북측의 첫 번째 발표는 현철 부원장의 〈고려의학의 연구 현황〉이었다. 고려의학 과학원이 전국의 전통의학 연구 중심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과학원의 구조와 기능과 연구 활동을 포괄적으로 소개함으로써 고려의학 전반의 연구현황을 설명했다. 연구 범위가 기초 이론 연구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임상 연구까지 아우르고 있고, 새로운 진단과 치료 기기 개발에도 활발히 나서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한 "고려의학과학원은 물론 전국 23개의 시·도에 고려병원이 설치돼 있다"며 북의 고려의학체계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남측에서는 김남수 정통침뜸연구소 이사장이 〈통증 없고 흉터 없는 화상 침 치료〉에 대하여, 필자가 〈전통 침술학의 과학적 연구〉에 대하여 발표하였다. 화상 침 치료의 특징인 통증의 신속한 해소, 빠른 치유와 무 후유증, 흉터와 변형의 방지 등 3가지의 장점을 소개하고, 특히 화상 침 치료에서 아시혈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화상 치유과정에 대해 조직학적 소견을 제시하며 설명하였다. 필자는 형이상학과 철학을 바탕으로 한 전통의학을 해부조직학적 연구, 전기자장학적 연구, 신진대사 내분비하적 연구, 심리정신의학적 연구 등의 네 가지 면에서 구체적인 연구 사례를 제시하며 설명하였다.
북측의 두 번째 발표는 고려의학과학원의 침구연구실 김수경 실장이 현철 박사와 함께 개발한 〈경혈 예보진단체계에 대한 연구〉였다. 인체 내부의 장기는 자율신경에 의해 좌우되며 자율신경의 반응은 피부에 '전기적 전도성과 저항성의 정도'로 나타나는데, 이를 특별한 피부 점에서 측정하여 장부의 기능을 평가하는 기기에 대한 연구였다.
특히 이러한 전기적 반응이 귀의 피부에서 예민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귀의 침점을 이용하는 '귀침 혈 예보진단체계'를 개발한 것이다. 진단에도 사용하고 치료에도 사용하는 기기이다.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기기가 다른 나라에서 보고 된 바가 있으나 고려의학 과학원에서 그 옛 기기의 단점들을 보완하여 새롭게 개발한 것이다.
간단한 토막 발표였고 짧은 시간의 만남이었지만, 언어의 장벽이 없고 같은 정서를 공유한 한 민족이, 특히 같은 분야의 같은 전문가들이 서로의 얘기를 경청하고 한 식구의 너그러움으로 박수치며 서로 격려하는 모습에서 가슴 뭉클한 감격을 경험한 것은 나뿐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연히 알 수 있는 자리였다.
여기서 느낀 감회와 보람은 와글와글하는 참석자의 수 때문은 결코 아니며, 심오한 연구 내용의 깊이 때문도 아니며, 토론회의 광범위한 규모 때문은 더욱 아니다. 단지 남북 학자들이 자리를 같이하고 학문적 뜻을 같이 한다는 데에 그 의미를 두는 것이다.
계획된 시간의 제약 때문에 고려의학과학원 시설을 두루 견학할 기회도 없었고, 그 곳에서 새로 개발한 진단·치료 기기를 직접 경험 해 볼 수도 없었고, 그 곳 연구원들과 느긋하게 의견 교환을 할 시간적 여유도 못 가졌던 것이 내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이런 것은 다음 기회에 다시 해야 되겠다는 여지를 남겨 놓았다는 점에서 희망적이기도 하다.

원에서 만난 '조국만세'
고려의학과학원에서 토론회를 마친 후 우리 일행은 평양산원을 방문했다. 평양산원은 1980년에 세운 평양 최대의 산부인과 센터이다. 건평 6만 평방미터에 13층 짜리 건물인 이 산원은 환자를 진료하는 제1구역을 중심으로 양쪽에 제2, 제3구역 건물이 서 있고, 그 외 몇 개의 부속 건물이 붙어 있다. 진료실은 약 2000개 정도가 구비되어 있다.
평양산원 참관은 시간관계 상 시설의 일부만을 안내 받아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신발에 덧신을 신고 옷 위에 위생 가운을 걸치고 안내 받은 산모 면회실과 일부 입원실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래층에 설치된 산모 면회실은 '무척 많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다. 칸칸이 막혀있는 면회실에는 방마다 폐쇄회로 화상화면과 무선 통화시설이 갖춰져 있어서 산모나 신생아가 격리 된 상태에서 면회 온 가족과 만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특히 한 사람씩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동시에 면회를 와도 다함께 화면화상을 통해 산모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갓난아기를 볼 수도 있는 시설이다.
입원실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엄청난 수의 인큐베이터(조산아 보육기)였다. 평양산원은 전국의 센터이기 때문에 "쌍동이나 기타 조산아가 전국에서 모여 인큐베이터를 필요로 하는 갓난아기가 많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재미있는 설명은 네 쌍동이를 낳으면 이름을 지을 때, 예를 들어서 돌림자가 '병'일 때 '조·국·만·세'의 한 자씩을 따서 '병조' '병국' '병만' '병세'라고 짓는 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인큐베이터 안에 신생아 두 명 씩 누어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을 보고 "얘네들, 다불 베드 쓰네"하고 농담하는 북측 사람도 있었다.
이 곳 평양산원에서도 고려의학 과학원에서와 마찬가지로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두루 참관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이제 남북 침뜸교류는 막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다음에 와서 더 많은 것들을 이룰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인해 비록 짧은 일정이었지만 아쉽지 만은 않았다.

전세일(69) 박사는 국내에서 대체의학 분야의 권위자로 꼽힌다. 국제자연치유의학연맹 회장, 한국키비탄클럽 총재, NHB자연의학TV 회장 등도 맡고 있다. 이번 토론회에서 그는 "서로 다른 장단점을 지닌 남북의 의료체계가 통합되면 세계 의료를 주도할 수 있는 종합의학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남북의학교류의 가능성에 기대감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