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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당선생님 기사

관리자

2003.03.18 00:00:00 화

◎ No, 22
◎ 작성일:2000.9.22(금) 17:12
◎ 조회:823 회

구당선생님기사

*한국승강기 안전 관리원 2000/9/10 -사외보에서
www.kesi.or.kr

[아름다운 사람들/현대판 허준 구당 김남수 옹]
현대판
허준 구당 김남수 옹
날마다 밤 새는 동대문 골목

오전 6시. 일찍 길을 나선 차량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도로변 물웅덩이를 터트리며 어둑어둑한 동대문의 새벽을 깨운다. 간밤에 내린 비 때문인지 일찍 아침이 열린다는 동대문 일대도 아직은 인파가 많지 않다. 동대문

운동장 건너편 골목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허름한 건물 앞에 조그마한 나무 현판이 하나 붙어 있고 그 밑에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아주머니, 아저씨, 노인들, 어린 학생까지 대략 50명 쯤 되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간이 의자나 신문지에 의지한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얼핏 새벽 인력시장에 나온 사람들 같기도 한 이들은 김남수 침술원장에게 치료를 받기 위해 경향각지에서 몰려든 환자들이다.

김 원장이 진료를 하는 화요일, 수요일, 금요일에는 자정부터 어김없이 사람들이 몰려든다. 워낙 많은 환자들이 자정부터 줄을 서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환자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규칙이 생겨났다. 먼저 오는 사람 순서대로 침술원 간판 위에 붙어 있는 종이에 자기 이름을 적는 것이다. 이 이름이 그날의 진료 순서가 되는 것이다.

한때는 이 종이 쪽지를 바꿔치기 하는 환자도 있었다. 대판 싸움이 나기도 해서 이제는 환자들이 번갈아 가며 종이 쪽지를 밤새 지킨다. 침술원이 이곳에서 문을 연지 어언 20년. 그 동안 대략 40만 명의 환자들이 이곳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40만 명이 이곳에서 밤을 새며 기다려 진료를 받았다. 도대체 김남수라는 침술사가 누구이길래.

“침과 뜸으로 못 고치는 병은 없어요.”

“사람들은 나를 찾아오는 게 아니고 침과 뜸을 찾아 이곳에 오는 거지요. 침과 뜸의 효험을 아니까 밤새워 기다리는 거지. 내가 아무리 밤새기다리지 말라고 해도 소용이 없어요. 이렇게 아침 일찍 나와 한 명의 환자라도 더 보는 수밖에 없어요”

어둠이 채 꼬리를 감추기 전인 아침 6시 30분. 침술원 문을 열고 들어서는 백발이 희끗한 노인. 올해 86세의 구당 김남수 옹은 침구사다. 김남수 옹의 표현대로 한다면 그는 ‘의원’이다. 그의 부친도 의원이셨다. 그는 의술을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았다. 그가 말하는 ‘의원’이란 모름지기 재물에 욕심 내지 않고 침과 뜸으로 병자를 낫게 하는 인술을 베푸는 사람을 말한다. 그는 평생 의원의 길을 걸어 왔다.

가난한 병자들에게 무료로 진료를 해 주는 것이 김남수 옹에게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한 주 중 사흘만 돈 받는 진료를 한다. 나머지 사흘은 무료 봉사 시간이거나 침뜸을 알리는 시간으로 보내고 있다. 남수침술원 봉사자들

과 함께 의료봉사 활동을 조직적으로 시작한 것은 84년 부터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시작해서 지난 40여년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무료진료를 해 왔다. 틈만 나면 복지관으로 양로원으로 섬으로 산골로 돌아다니며 무료 진료를 하고 있다.

사흘간의 유료 진료도 진료비가 목적은 아니다. 그는 되도록 환자 자신이 치료할 수 있도록 뜸자리를 잡아주고는 집에서 혼자 치료하라고 주문한다. 그런데도 환자들은 그의 바쁜 일과 속으로 불나비처럼 찾아든다. 그의 침

으로 죽다 살아났다는 입 소문이 전국으로 퍼져있기 때문이다. 굳이 광고를 하지 않아도 지난 몇 년 간 그의 침술원에 환자가 떨어져 본적이 없을 만큼 그의 의술은 정평이 나 있다. 돈을 벌려고 했다면 재물이 하늘에 닿았을 거라고 껄걸 웃는 김남수 옹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침, 뜸이 제일이고 약은 셋째다”

사람들은 ‘침구사’라고 하면 잘 모른다. 얼핏 ‘한의사’라고도 생각하고 ‘맹인 지압사’ 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962년 침구사 자격제도가 폐지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껏 생존해 있는 침구사는 62년 이전에 자격을 획득한 1백여 명에 불과하다. 그 중 아직도 진료를 하는 사람은 손꼽힐 정도다. 한의사도 물론 침과 뜸을 다루지만 국내 한의대는 160학점 가운데 침과 뜸에 대해서는 고작 16학점만을 할애하고 있어 침 뜸을 배우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침과 뜸을 제대로 알고 있는 수많은 의료인들은 오히려 불법 진료라는 멍에 때문에 진료를 하지 못하거나 숨어서 침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침과 뜸은 하늘이 내린 최고의 의술이지. 침과 뜸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없어. 침의 후진국이었던 미국도 차세대 대체의학은 침밖에 없다고 해서 41개 주가 1년 동안에 침구사 법을 제정하고 41개 침구대학을 설립했거든.

전문 침구사도 1만 명이나 돼요. 그런데 침의 종주국인 우리나라에서는 침구대학 하나도 없고 침을 배워봤자 진료를 못해. 침을 꽂으면 불법이 되니까”

김남수 옹이 침과 뜸을 강조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침과 뜸은 약보다 효험이 높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80평생 수많은 환자를 보았다. 이병원 저병원 이약 저약 다 다니고 써 봐도 낫지 못했던 환자들을 침과 뜸으로 거뜬히 고쳐낸 것이 부지기수다. 예로부터 동양의학에서는 사람이 병이 나면 一鍼二灸三藥으로 다스린다고 했다.

김남수 옹은 자신의 평생을 통해 침뜸의 효험을 확신하고 있다. 자신의 아내가 옷에 살이 묻어나올 정도의 치명적인 화상을 입었을 때도 불과 8일만에 침으로 환부를 없애버린 일은 너무나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으며 중화상을 입은 사람들을 치료한 녹화테잎이 방송국을 통해 방영된 일도 있다. 허리디스크, 간염, 사시, 당뇨병, 중풍, 재생불량성 빈혈 등 현대 의학으로도 완치가 어려운 수많은 난치병들과 싸우면서 침과 뜸으로 고치지 못할 병은 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김남수옹이 침과 뜸에 주목하는 두 번째 이유는 침과 뜸은 가난한 환자들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한약이나 양약은 모두 비싸다. 가난한 사람들은 병을 알고 치료 방법을 알아도 약값이나 병원비 때문에 병을 고칠 수 없다. 그러나 침과 뜸은 약보다도 높은 효능을 가지면서도 치료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침은 그나마 시술자의 정력이 한정되어 있어 한번 맞을 때마다 얼마 간의 돈이 들게 되지만 뜸은 한번 뜸을 뜨면 환자 몸에 뜸자리가 남기 때문에 그 후엔 집에서 가족들의 손을 빌려 자가 치료를 할 수 있다. 뜸이야 말로 돈 안드는 최고의 민간치료술인 것이다.

“약값은 매길 수 있어도 침값은 매길 수 없지. 침구사는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 병 고치는 재미로 살아야 해. 병 고치는 재미가 있는 한 나는 침 값이 없어도 좋아. 나는 병 고치는 재미로 사는 침구사거든”

인술에는 귀천도 없고 국경도 없다.

김남수 옹에게는 일요일도 휴일이 아니다. 일요일 오전에는 밀려 있는 환자들을 위한 진료를 하고 다시 오후 1시부터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무료 진료를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무료 진료는 침술원에서 조금 떨어진 금호 팔레스 빌딩 18층에서 한다. 이 봉사 활동에는 김남수 옹 외에도 다른 봉사자들 대여섯 명이 함께 일을 하기 때문에 보다 넓은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적당한 의료혜택도 없이 남의 나라에 와서 고생만 한다는 얘길 내게 치료받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여러 번 들었어요. 그래 늘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러던 참에 금호건설 박정구 회장이 내게 진료를 받으러 왔길래 지나가는 말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진료 봉사에 대해 이야기 했더니 선뜻 돕겠다지 뭐예요. 그래서 이 팔레스 빌딩 18층을 쓸 수 있었지요. 내게 치료받은 사람들 가운데는 이렇게 내 뜻을 알고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요.”

이렇게 시작된 외국인 노동자 진료는 벌써 1년을 되었고,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찾아들고 있다. 반나절의 진료시간 동안 찾아오는 노동자들의 수는 하루 평균 삼사십명. 오늘은 13명의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멀리 안산에서부터 단체로 찾아와 진료를 받기도 했다. 취재 도중 방글라데시 국적의 Anwar Hossain(30세)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4년전 한국에 들어와 건국대학교에서 어학코스를 밟으면서 다이어리 제작 업체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5년 전부터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주기적인 흉부통증과 함께 입술이 벗겨지며 입술부위에 통증이 오는 지병을 앓고 있었다. 국내의 유명 병원에서 여러차례 진료를 받았으나 병명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알게 된 김남수 옹에게 4차례 침을 맞게 되었는데 흉부통증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입술은 여전하지만 김남수옹의 말대로 몇차례 더 치료를 하면 곧 괜찮아질 것으로 믿는다며 기뻐했다.

서민의 편에 선 로비스트 할아버지

김남수 옹을 쫓아다니다 보면 얼마전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드라마 ‘허준’이 생각난다. 침술의 범상치 않음이야 당연히 닮은 꼴이지만 그가 재물에 욕심이 없이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쫓아다닌다는 점이 너무나 닮았고, 허준이 자기 자신만의 힘으로 수많은 병자를 돌보지 못함을 한탄하여 동의보감의 저술에 남은 평생을 걸었듯, 대다수 가난한 국민들의 건강을 몇 안남은 침구사들이 돌볼 수 없기에 전국 방방곳곳에서 침구사들이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침구사 제도의 부활에 모든 정력을 바치고 있다는 점이 또한 너무나 비슷하다.

김남수 옹은 1년 전부터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국회에 나가 국회의원들에게 무료 방문치료를 해 주고 있다. 오줌 눌 시간도 아끼며 새벽부터 저녁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진료를 해도 줄을 선 환자들을 다 치료하지 못해 아쉬워하는 김남수 옹에게 매주 이틀이란 대단한 시간적 투자가 아닐 수 없다. 가난한 시민에 대한 봉사활동도 아닌 일에 그가 집착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에게 전국민 보건의 열쇠가 침구사 제도의 부활이라는 사실을 직접 체험케
하여 다른 의료 집단의 거센 압력에도 불구하고 침구사 제도의 입법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지난 1년 간 그의 노력과 정성이 얼마나 간절했던지 불과 1년만에 69명의 의원들이 침구사 제도의 부활에 동의하여 입법을 추진했다. 김남수 옹은 ‘대다수 서민’이라는 이익집단(?)의 편에서 가장 참신한 로비(?)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김남수옹은 자신이 의원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 지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