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속으로

침뜸과 뜸을 모두 다루던 아버지 슬하에서 배우고 익힌 내가 약이 아니라 침을 선택한 것은 굳이 약을 쓸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침과 뜸에 대한 믿음은 응급 환자를 살리는 경험이 되풀이 되면서 더욱 굳어졌다. 지금이야 병원마다 응급실이 있지만 의사가 없는 무의촌이 수두룩하던 과거에는 침 놓는 의원이 곧 응급실이었다. 응급 구조 요청은 시도 때도 없이 들어왔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잠을 자도 편안하지가 않았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 ‘오늘은 별 일 없어야 할 텐데’하는 심정일 만큼 그때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살았다. 위급한 환자를 두고 가지 않을 수 없어서 집안 일은 늘 뒤로 미루어 놓았다. 식구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환자가 있으면 어디든 가야하는 것이 의원의 도리이니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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