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구사 법제화 위해 동분서주 "인류최고의 전통 의술 꼭 살려야"

91세의 '현역'침술사인 구당 김남수 옹이 환자에게 무료 침술 봉사를 하고 있다.

#뜸으로 다스려 여전히 건강하오

스스로 지은 아호가 '뜸집',즉 구당인 김 옹은 도저히 구순의 연세로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는 쩌렁쩌렁,침뜸 봉사실을 가득 채웠고 최근 들어 오른쪽 귀가 예전같지 못하다고 했지만 대화를 나누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그는 지난 1943년 남수 침술원을 개원한 이래 60여년을 침과 뜸으로 아픈 자들을 보살펴 왔다.

스스로 몸을 돌보고 자원봉사에 나서게 된 연유는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슴이 조이고 숨이 막히는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입원,3일간 혼수상태,40일을 산소마스크를 쓰고 지냈고 다시 6개월의 입원치료를 받았단다.

그래도 의사들은 가슴을 짓누르는 통증을 잡지 못했다. 집에 가겠다고 우긴 구당 선생은 아들에게 뜸을 떠 달라고 했다. 자신이 일러준 자리에 뜸을 뜨고 1~2분 지나자 무거운 통증이 일시에 걷혔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는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스스로에게 뜸을 뜬다. 뜸을 통해 인체의 자연치유력을 높여 지금까지 건강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심근경색의 경험이 그에게 건강만 안겨준 것은 아니다. 생사를 넘나들면서 구당 선생은 '이 세상에 태어나 무엇하나 해놓은 것이 없이 가는구나'하는 후회에 젖었다고 했다.

다시 건강을 찾자 그는 일반인들 누구나 배,팔다리,정수리 등 10곳을 자극하면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무극보양뜸을 완성했다. 또 84년에는 민간의료봉사단체 뜸사랑(www.chimtm.net)을 만들어 뜸을 보급하고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다. 구당 스스로도 일주일에 적어도 3일은 전국 각지를 돌며 무료 침뜸 봉사를 하고 있다.

화상환자를 고통 없이,흉터 없이 침으로 치료하는 화상 침술을 개발,지난 94년 세계침구학회연합회 국제침구학술 심포지엄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양의사도 한의사도 침 놓고 뜸 떠야 한다"

구당 선생의 심근경색을 부른 건 다름아닌 침구사 합법화 문제였다. 법 개정을 위해 동분서주하다 얻은 마음의 병이 몸으로 드러났던 것.

일반인들은 내력을 잘 알지 못하지만 우리나라의 침구사 제도는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부가지난 62년 의료법을 개정하면서 없어졌다. 당시 전국에는 11개의 침구학원이 있었으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한번도 침구사 시험을 통해 침구사를 배출하지 않았고 침구사 제도마저 없어지면서 양성의 맥이 끊어졌다.

구당 선생은 부친으로부터 침구술을 전수받아 일제강점기인 지난 43년 침구사 자격증을 받았다. 우리나라 최후의 침술사 중 한 사람인 셈이다.

그는 스스로를 의학자가 아닌 의술자라고 칭한다. 지금은 한의사든,양의사든 의사가 되려면 어려운 시험을 거쳐 6년 동안 공부를 해야 하지만 침술과 뜸술은 배우고 익히기만 하면 글을 모르는 사람도 할 수 있다는 게 구당 선생의 말이다.

하지만 침구사 양성의 길이 막힌 지금,의학계는 영역과 밥그릇을 둘러싼 다툼이 난무할 뿐 정작 환자의 병을 낫게 하겠다는 의자(醫者)의 기본정신은 부족하다고 구당 선생은 목소리를 높였다.

"세계보건기구는 이미 1976년 현대의료에 침을 병용하도록 회원국에 권장하기 시작했다"는 구당 선생은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는 양의사도 한의사도 침을 놓고 뜸을 떠야 하며 침뜸을 전문적으로 하는 침구사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국민들 누구나 구급이나 응급의료를 할 수 있을 만큼의 간단한 침술과 손쉬운 뜸술은 할 줄 알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지난 8월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세계 침구제도의 현황과 한국의 미래에 관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정형근 의원과 김춘진 의원이 주최한 심포지엄이었다. 국회 개헌 이래 처음으로 침구제도에 대한 심포지엄이 열린 데 대해 구당 선생은 드디어 제도 정비의 첫발을 떼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지금 구당 선생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사람들은 그가 '붕어빵'이라고 부르는 뜸사랑 자원봉사단이다. 뜸사랑에서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초·중·고급과정의 침뜸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1년 과정을 마치면 자체 뜸요법사 자격시험을 친다. 이 시험에 합격하면 구당 선생의 붕어빵처럼 침뜸 봉사에 함께 나선다. 현재 800여명의 봉사요원들이 전국적으로 30여곳의 봉사실에서 봉사를 펼치고 있다. 불우노인,생활보호대상자,장애인,외국인노동자 등이 대상이다.

"침과 뜸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는 구당 선생은 "인류 최고의 의학인 침술과 뜸술을 다시 살려야 한다"며 다시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배재정기자 doublej@busa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