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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누구나 자연으로 생겨서 자연의 힘으로 태어나 자연으로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 앓지 않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 모든 힘을 다 합니다. 평생을 건강하게 살려는 마음은 만인이 다 같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게 평생을 병과 싸우는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의술이 비롯되었습니다. 따라서 의술을 가지고 사사로이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것은 자연의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라 하여 인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침과 뜸은 인류 최초의 의술이고 원시의학이다.
그래서 옛말에 침은 일자무식이라도 잘 놓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누구라도 어떤 병일 때 어느 자리에 침을 놓아 낫는지를 눈여겨보아 익힌다면 그와 똑같은 병은 직접 침을 놓아 고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침과 뜸은 학(學)보다는 술(術)이 앞선다는 뜻입니다.
물론 침과 뜸으로 여러 가지 병을 고치는 의술자가 되려면 의학적인 지식과 전문적인 기술을 오랫동안 익혀야 합니다. 하지만 누구든 아는 만큼 시술할 수 있고 그만큼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듯 침과 뜸은 이 땅의 역사가 기록되던 그때부터 백성들의 삶과 함께 해온 탁월한 우리의 전통 민간의술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침뜸이 1962년 침구사 양성제도를 없애는 바람에 당시 11개나 되던 관인(官認) 침구학원이 문을 닫았고, 거기서 배출된 5천여명의 침구인들은 시험 한번 보지 못하고 '돌팔이'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침과 뜸의 정통적인 맥을 합법적으로 이어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해방 이전부터 해오던 면허가 있는 침구사도 이제 대부분 세상을 떠나고, 고령에 이른 80여명만이 살아 있으며 실제 침술원 간판을 달고 시술하고 있는 침구사는 50여명. 보건복지부 내의 관련 부서에서는 사라져가는 직종에 대해 아쉬워하는 빛조차 없고, 도리어 하루 빨리 사라져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의 삶 속에 뿌리를 내린 생활의술은 쉽게 없앨 수 없습니다. 체했을 때 따주기를 하는 정도의 시술행위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다 하고 있습니다. 전국에 면허 없는 침구사가 30만~50만으로 추산됩니다. 우리 침뜸이 들풀 같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한국에서는 침구(鍼灸)가 한방의 범주에 속한다고하여 한의사가 침구까지 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잘못 알고 있는 현실입니다.
침뜸은 독립적인 체계를 갖춘 하나의 전문의학분야이며, 특히 전문시술자가 있어야합니다. 침뜸을 한약에다 섞어버리면 침뜸은 묻혀버립니다. 이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입증되어 있습니다. 국가가 생겨 전통의료를 제도화하기 시작하던 시기부터 침뜸을 전문적으로 시술하는 사람들을 배출해 왔습니다. 중국에서는 당나라시대부터 침뜸을 전문과로 구분했고, 조선에서는 세종대왕시절부터 침구의(鍼灸醫)를 배출하여 전문적으로 발전시켜왔습니다. 최장수국인 현대 일본에서는 침사와 구사를 각각 12만명씩에 이릅니다. 이들 침구사가 전대미문의 고령화 사회에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현대사에서는 전문침뜸의 역사를 스스로 끊어 버리고 있습니다. 한약에다 침뜸을 묻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뿐이던 한약전문 학원이 동양의약대로되었다가 60년대 중반 경희대가 이를 흡수하여 의대를 설립함으로써 경희의대 내에 4년제 한의과가 생겼습니다. 한의대의 뿌리는 한약을 중심으로 한 교육기관입니다. 60년대 초까지는 적어도 십수년간 한의사 국가고시에는 침구과목이 전혀 들어 있지도 않았다. 그 후 경희대를 포함하여 10여개의 한의 대가 생겼으나 한약을 중심으로 가르치고 침뜸은 뒷전으로 되어, 침과 뜸의 맥을 제대로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한약만을 주로 공부한 한의사들이 교수가 되었으니, 우리나라 대부분 한의대에서는 제대로 맥을 잇는 침구교수가 별로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정임에도 모든 한의사가 침을 놓을 수 있다고 믿도록 하는 것은 국민들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대다수 한의사들의 침시술은 한약판매의 보조수단으로 하기 때문에 형식적인 침시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로 인해 탁월한 침구술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국민들이 의료비를 턱없이 낭비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나라의 보건의료계 상황으로 볼 때 국민들이 나서지 않으면 침구사 양성제도를 만들지 못할 것입니다. 직능 단체의 이해에 따라 보건의료정책이 좌우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침뜸의술이 국민들에게 필요하다면 국민들이 직접 나서 침뜸부흥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침과 뜸에 관한 시민교양을 높여 침뜸을 대중생활의술로 발전시켜야 하고, 침구대학을 설립하여 침구전문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나아가 재야침구인들의 의술을 검증하여 민간의술의 맥을 제대로 이어나가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한의사와 의사는 물론 모든 보건의료인들이 침과 뜸을 제대로 배우고 익혀 우리 의술로 국민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아득한 그 옛날부터 백성들의 건강을 지켜온 침뜸인술(仁術)을 국민의술로 다시 살려, 홍익인간의 큰 뜻을 실현하는데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온 국민이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