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 지역은 천지가 시작되는 곳으로서 생선과 소금이 생산되는 지역이며 바다를 끼고 있다. 그곳 사람들은 물고기를 주로 먹고 짠 것을 좋아하는데, 모두 그곳에 사는 것을 편안하게 여기고, 그곳에서 나는 음식물을 즐긴다. …(중략) … 그들에게 발생하는 병은 대부분 옹양(雍瘍)인데, 그것을 치료할 때는 폄석(貶石 : 돌침을 지칭함)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폄석은 동방에서 전래되었다. …(중략) … 북방자는 …(중략) …장이 차가워져 창만병(脹滿病)이 잘 발생하는데, 이를 치료하는 데는 쑥뜸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쑥뜸은 북방에서 전래되었다.

여기서 동방이라 함은 중국 본토의 동방이나 한반도와 만주 일대를 지칭한다. 북방은 만주의 서부지대로부터 몽고 일대까지를 가리킨다. 이는 침술과 뜸술이 중국 본토보다는 동방과 북방지역에서 먼저 사용되었음을 뜻하고 문자로 기록되면서 중국 본토의학으로 발전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자로 기록된 가장 오래된 자료가 1973년 장사시(長沙市) 마왕퇴(馬王堆) 3호(三號) 한묘(漢墓)에서는 경맥(經脈)이 기재되어 있는 두 가지 백서(帛書)가 출토되었는데 모두 선진시대(先秦時代)에 편찬된 것으로 경락이론(經絡理論)의 초기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족비십일맥구경』(足臂十一脈灸經)과『음양십일맥구경』(陰陽十一脈灸經)이라는 이 유물은 현존하는 최초의 경맥학설(經脈學說) 문헌이다. 이 유물은 황제내경이 나오게 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약학은 본초학에 바탕을 두고, 침구학은 황제내경에 바탕을 두고 발전한 것이다.

이러한 자료들에서 침뜸의학이 약과는 태생적으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학의 전문과적 발전


현재 중국은 전통의학에 대해 고대의 의료체제와 유사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 국가중의약관리국 교육방침에 의하면, 중국의 전통의학은 침구학전공을 별도로 두고, 중의학전공, 추나학전공 등 10여 개 세부 전공분야로 나뉘어져 있다.

일본은 동양요법이라 하여 전통의술을 적극 계승, 발전시키고 있으며 현대 일본에서 침구술은 동양요법의 핵심이다. 일본의 침구전문인력은 침사와 구사이다.
침술을 포함한 전통의학이 일본에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서기 1세기 전후로 보인다.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불교와 함께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에 따르면 침과 뜸, 안마가 공식적으로 전파된 사건은 서기 572년 중국 오나라의 지총의 일본 방문이다. 지총은 『내외전(內外典)』 『약서(藥書)』 『침구명당도(鍼灸明堂圖)』 등 의서 160여권을 가지고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일본의 의료제도는 701년 대보률령 제정이 기점이다. 문헌에 따르면 이 시기 일본의 의료제도는 상당히 합리적이고 발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초보적이지만 의사, 침사, 안마사, 여의(女醫) 등 이미 전문의 제도를 도입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대보률령이 제정되면서 의료제도가 정비되고 비로소 의학교육이 시행되었다.
근대에 들어와 사실 의학계로부터 경시되던 침구술과 안마술이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던 데는 맹학교와 시각장애자들의 역할이 매우 컸다. 우리나라에서 안마사가 시각장애인의 직업으로 인식된 것처럼 일본에서도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침구술과 안마술을 생계 방편으로 삼고 있다. 서양문물이 들어오고 전통의학이 의학계로부터 경시되던 시기를 거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1909년 시각장애인들 사이에서 청원운동이 일어났다. 안마술을 직업으로 하던 그들이 낸 청원의 주요 요지는 "안마술업을 맹인의 전문업으로 하라"는 것이다. 1911년에 시각장애인들은 침구사들과 힘을 합하여 침구,안마술에 관한 청원운동을 벌였고 그 결과 침구,안마술에 관한 첫 법령인『침술,구술 영업관리규칙』 및 『안마술 영업관리규칙』이 제정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 물자가 풍부해지고 전쟁터에서 의사들이 돌아오자 일본 정부는 의료제도심의회를 발족하고 의료제도를 재검토하게 된다. 의료제도심의회는 침구술과 안마술은 의사의 지시 아래 시술해야 하며, 시각장애인에게 침구사 신규 면허를 수여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린다. 이와 같은 결정은 침구사와 안마사에게는 대단히 불합리한 것이었다. 침구사 단체와 관련 단체는 이제까지 의사의 감독 없이도 업무를 훌륭히 수행해왔음을 상기시키며 정부의 결정에 격렬하게 반대하였다. 결국 1988년 일본 정부는 침구술 및 안마술을 직업으로 하는 이의 자질을 획기적으로 쇄신할 필요성을 느끼고 법을 개정하기에 이른다.
현재 일본에는 의사,치과의사와 별도로 안마사,지압사,침사,구사 등에 관한 법률이 있다. 이 법률에 따르면 침구사의 면허는 국가에서 수여하는 면허로, 면허증이 있는 사람은 병원에 취직할 수도 있지만 독립 개업도 가능하다. 침구사 면허시험은 원래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전문학원에서 소정의 교육을 마친 이에 한해 도도부현(都道府縣. 일본의 행정구역)에서 진행하는 시험이었으나 1993년부터 국가시험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침사나 구사 시험에 응시하려면 3년제 이상의 전문학교를 졸업하면 된다. 2001년 현재 침사,구사,안마-마사지-지압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학생을 배출하는 교육기관은 시각장애인 학교를 포함해 전국에 126개교나 된다. 이들 학교의 졸업생들이 침사 및 구사시험에 응시하게 되는데 매년 각각 약 2,500여명씩 배출되고 있다. 2001년 현재 일본의 침사(鍼師) 수는 약 12만명 선, 구사(灸師)는 12만명 수준이다. 이렇게 엄청난 수의 침구사를 보유하고 있는데도 일본은 새로운 침구사를 꾸준히 양성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고령화 현상에 직면해 있는 일본은 초고령사회의 의료대란을 침과 뜸으로 돌파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한의사 수는 1만5천명 정도이다. 이들 한의사들은 대부분이 탕약을 중심으로 취급하는 사람이다. 침과 뜸만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연인원 24만명이나 되는 일본 침구사의 사회적 역할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 한국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고, 한의계는 애써 이를 외면하는 양상이다.

조선은 합리적인 의료체계를 수립한 나라였다. 조선의 의원은 한방의사와 침구의사로 나뉘어져 있었다. 한약재를 배합하여 조제하는 한방분야와 침뜸을 이용해 인체를 자극하는 침구분야는 근본적으로 다른 영역이라는 결론에 따라 내린 조치였다.
전문침구의 제도가 본격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한 것은 세종 대에 이르러서다. 세종은 침뜸전문생을 매년 3명씩 선발하여 전의감, 혜민국, 제생원의 삼의사에 한 명씩 배속시켰다.(세종 20년, 1438년)
침구전문의제도가 완성된 것은 성종 대에 이르러서다. 성종 3년(1472), 성종은 의학권장(醫學權裝) 10조를 정하는 중에 침구전문의를 따로 설치할 것을 명하였다. 그리고 성종 16년(1485), 약 1세기에 걸쳐 완성한 조선 최고의 법전『경국대전』의 의과취재(의과고시 또는 의과시험에 관한 것)에 침구분야와 약제분야의 취재를 분리한다고 기록하면서 침구와 약제의 분리, 독립을 법으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밤에 선조에게 갑작스런 두통이 발생했다. 입시한 의관 허준에게 선조가 묻는다. "침을 맞는 것이 어떻겠는가?"
허준이 아뢴다.
"여러 차례 침을 맞는 것이 송구스럽기는 하지만, 증세가 긴급하니 상례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침의들은 항상 ‘침으로 열기(熱氣)를 해소시켜야 통증이 감소된다'고 말합니다. 소인은 침놓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허임도 평소에 말하기를 ‘경맥을 이끌어낸 뒤에 아시혈(통증이 있는 곳을 침자리로 삼는 것)에 침을 놓을 수 있다'고 하는데, 이 말에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잠시 후 병풍이 쳐지고 남영이 혈자리를 정하고 허임이 침을 놓는다. 한 달 뒤 대대적인 포상이 따른다. 어의 허준에게는 숙마 한 필이 하사되고 허임과 남영은 6,7품의 관원에서 당상관으로 파격 승진을 하게 된다.

고대 이후 침구술이 꽃피었던 한국, 중국, 일본에서 한결같이 침구분야를 약제분야와 분리하여 발전시켜온 것은 침구술 고유의 특성 때문이다.
침 몇 자루와 뜸쑥, 그리고 시술자만 있으면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침구술은 비용은 매우 저렴한 반면 효과는 대단히 탁월하다. 환자와 국민보건, 국가 재정에 있어서는 대단히 유익하고 더없이 경제적인 치료법이다. 반면 돈벌이는 그다지 되지 않는 것이었다. 특히 침구술은 ‘힘만 들고 돈은 안 되는' 천덕꾸러기가 되기 십상이다.
침구를 한약과 섞어버리면 제도권 의료제도 안에서 쉽게 밀려나게 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과거 40년 동안 한의사들에게 한약분야에 침구분야를 통합시켜 사용하도록 한 결과 침구가 어떻게 되었는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침구사(침구의사) 제도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최선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