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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소원은 정통침뜸 맥잇기

관리자

2003.06.09 00:00:00 월

내 평생소원은 정통침뜸 맥잇기(11)

김남수의 침뜸 이야기(11) 마지막회

김남수(침구사, 정통침뜸교육원 원장)

엊그제 청춘인 듯 했는데 어느덧 90이 가까워져 버렸다. 나 태어나 이 강산에서 침구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평생을 침과 뜸으로 환자를 치료하면서 살아왔다. 1962년 침구사 양성제도가 없어진 이래, 평생소원이 침과 뜸의 맥을 이어놓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나 둘 동료 침구사들이 세상을 떠나더니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고령의 노인이 된 침구사 50여명 뿐. 앞으로 얼마 못 가서 침구사라는 이름이 이 땅에서 사라져 버릴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침과 뜸으로만 환자를 치료하는 직업은 찾을 수 없게 된다. 침구사라는 우리의 이름은 어느 골동품 가게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것이다. 참으로 한스럽고 부끄럽다.
침구사가 역사에서 이렇게 사라져야할 존재인가. 그렇게도 쓸모없는 존재였단 말인가.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정통 우리 침구사들의 침과 뜸이 이 땅에서 사라지게 하기에는 너무나 아깝고 안타깝다.
사람은 누구나 자연으로 생겨서 자연의 힘으로 태어나 자연으로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 앓지 않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 모든 힘을 다 한다. 평생을 건강하게 살려는 마음은 만인이 다 같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게 평생을 병과 싸우는 수가 있다. 여기서 의술이 비롯되었다. 따라서 의술을 가지고 사사로이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것은 자연의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라 하여 인술이라고 하는 것이다.
침과 뜸은 인류 최초의 의술이고 원시의학이다. 그래서 옛말에 침은 일자무식이라도 잘 놓을 수 있다고 했다. 누구라도 어떤 병일 때 어느 자리에 침을 놓아 낫는지를 눈여겨보아 익힌다면 그와 똑같은 병은 직접 침을 놓아 고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침과 뜸은 학(學)보다는 술(術)이 앞선다는 뜻이다. 물론 침과 뜸으로 여러 가지 병을 고치는 의술자가 되려면 의학적인 지식과 전문적인 기술을 오랫동안 익혀야 한다. 하지만 누구든 아는 만큼 시술할 수 있고 그만큼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침과 뜸은 이 땅의 역사가 기록되던 그때부터 백성들의 삶과 함께 해온 탁월한 우리의 전통 민간의술이다. 그런데 1962년 침구사 양성제도를 없애는 바람에 당시 11개나 되던 관인(官認)침구학원이 문을 닫았고, 거기서 배출된 5천여명의 침구인들을 한꺼번에 무면허자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백성들의 삶 속에 뿌리를 내린 생활의술은 쉽게 없앨 수 없다. 체했을 때 따주기를 하는 시술행위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다 하고 있다. 전국에 재야침구인이 수십만으로 추산된다. 우리 침뜸은 들풀 같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침뜸은 독립적인 체계를 갖춘 하나의 전문의학분야이며, 특히 전문시술자가 있어야한다. 침뜸을 한약에다 섞어버리면 침뜸은 묻혀버린다. 국가가 생겨 전통의료를 제도화하기 시작하던 시기부터 침뜸을 전문적으로 시술하는 사람들을 배출해 왔다.
중국에서는 당나라시대부터 침뜸을 전문과로 구분했고, 조선에서는 세종대왕시절부터 침구의(鍼灸醫)를 배출하여 전문적으로 발전시켜왔고, 성종 경국대전에서 전문 침구의사 제도를 완성했다. 최장수국인 현대 일본에서는 침사와 구사가 각각 12만명씩에 이르고, 이들 침구사가 전대미문의 고령화 사회에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
전문적인 침뜸 시술자 배출제도를 없애버린 지 40여 년 동안 우리나라 침뜸은 퇴보에 퇴보를 거듭해 왔다. 우리나라의 보건의료계 상황으로 볼 때 국민들이 나서지 않으면 침구사 양성제도를 만들지 못할 것이다.
최근 여야 국회의원들 45명이 침구사를 양성할 수 있는 의료법 개정안을 만들어 의원입법으로 침구사양성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한의사들의 반대가 극심하다고 한다. 왜 이들이 반대를 하는 것일까? 침과 뜸으로만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배출되면 왜 안 된다는 것일까? 이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의술은 의료인들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위해 존재한다. 환자에게 침뜸을 전문으로 하여 치료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면 침구사제도를 만들어야한다. 나는 평생을 침뜸으로 환자를 치료해 오면서 침구사가 환자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몸소 확인했다. 이제 침구사 제도가 필요하다면 국민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
이 땅에 침구사를 계속 배출하여 세상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데 침과 뜸이 널리 쓰이도록 해야 한다. 침과 뜸에 관한 시민교양을 높여 침뜸을 대중생활의술로 발전시켜야 하고, 대학에 침구과를 설치하여 침구전문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재야침구인들의 의술을 검증하여 민간의술의 맥을 제대로 이어나가도록 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의사와 의사는 물론 모든 보건의료인들이 침과 뜸을 제대로 배우고 익혀 우리 의술로 국민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국민들의 힘으로 침구사 제도를 부활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꺼져 가는 호롱불에 다시 기름을 부어야 한다. 이 땅에서 수많은 침구사를 다시 배출시켜 침과 뜸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신뢰를 잃어가고 한계를 드러내는 우리나라 보건의료를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바로 침과 뜸에 있다고 확신한다.
아득한 그 옛날부터 백성들의 건강을 지켜온 침뜸인술(仁術)을 국민의술로 다시 살려, 홍익인간의 큰 뜻을 실현하는데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온 국민이 동참해 주기 바란다. 그래서 세월이 지난 후 또 다른 늙은 침구사가 나와서 침뜸 이야기를 후손들에게도 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