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침뜸 전도사 김남수 옹

팔팔한 '95세 청년'… "뜸 많이 뜬 덕이지"
헌재서 과반수가 '위헌' 판결… 되레 환영
선친에게서 배워 1993년부터 가르쳐 그동안 각계 6000여명이 침뜸 익혀
"배워서 남 주자" 모토… 계승발전 힘쓸것

스포츠한국 / 20010.08.06 / 글=이창호기자 사진=김지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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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당(灸堂)' 김남수 옹(翁). 올해 95세다.

오랜 시간 구당과 함께 사람들은 '노인네 옹'자가 접미사로 붙어 다니는 것에 대해 시큰둥하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고 해도 좋을 만큼 정신적, 신체적으로 정정한데 왜 자꾸 늙은 노인네 취급을 하느냐는 것이다.

지난 3일 서울 홍릉 인근에 있는 한국정통침구학회에서 만나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비결은 무슨… 뜸을 떠서 그래"라며 허허 웃는다.

지난달 29일 헌법재판소는 의사면허 없이 침이나 뜸 시술, 자기 요법 등 이른바 대체 의학을 원천적으로 금지한 옛 의료법 25조 1항(현행 의료법 27조 1항)에 대해 재판관 4(합헌) 대 5(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현행 법대로라면 침사(針士) 자격증만 있는 구당이 뜸을 뜨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구당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밝은 표정으로 헌재의 판결을 환영하고 있었다.

"참, 현명한 판단을 내려줬어요. 위헌 정족수 6명에 1명이 모자라 합헌이란 현행법이 그대로 유지되지만 재판관 9명 중 과반수인 5명이 위헌 의견을 냈잖아요. 침과 뜸의 가치와 존재를 인정받은 거에요."

헌재는 "국가에 의해 확인되고 검증되지 않은 의료행위는 국민보건에 위해를 낳을 수 있다"며 "무면허 의료행위를 전면 금지한 것은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보호하고 국민 보건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이행하는 데 적합한 조치"라고 밝혔다.

그러나 조대현 이동흡 목영준 송두환 김종대 재판관은 "의료법에 침구사 등 다양한 의료인 자격을 설정해 국민의 의료행위 선택권 침해를 줄여야 한다"며 위헌 의견을 냈다. 대체 의학에 대한 법적,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시점임을 다시금 확인시킨 것이다.

구당은 평생 침과 뜸으로 살아왔다. 특히 뜸은 우리 고유의 민간 요법이 대대로 계승 발전한 것이란 신념을 갖고 '붕어빵' 제자들을 양성하는데 많은 힘을 쏟고 있다.

'배워서 남 주자! 돈과 명예 자랑 말고, 봉사정신 계승하자 / 장사꾼이 되지 말고, 고통 없앤 뜸쟁이로 / 모든 사람 행복하니, 무한하게 즐겁구나 / 빈손으로 세상 왔다, 빈 몸으로 돌아가자 / 하루 해도 떴다 지니, 이 한 몸도 왔다 간다.'

짧은 문구를 통해 뜸 사랑 정신을 후학들에게 전하고 있다.

"내가 아버지에게 배웠듯이 침뜸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전통적인 민간 요법을 가르치는 겁니다. 법이 없을 때부터 침뜸이 이 땅에 존재했던 만큼 없어지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는 거지요."

침과 뜸은 인간 몸의 기를 소통하게 하는 수단이다. 온 몸을 돌고 있는 기가 막히면 병변이 생기고, 그 병변을 치유하기 위해 수천년의 경험을 통해 침과 뜸을 놓았던 것이다.

"전기줄이 끊어지면 불이 꺼지지요. 발전소나 전등의 문제가 아니라 전기 줄에 문제가 생겼으면 줄을 이어야 다시 불을 밝힐 수 있듯이 침과 뜸은 기를 이어주는 도구입니다. 단순 자극이 아니라 근본을 강하게 하는 힘도 있어요."

구당은 반드시 침은 '쇠꼬챙이'여야 하고, 뜸은 '직접구(灸)'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 알다시피 피 속에는 철분이 있어요. 과다 출혈을 하면 반드시 철분부터 보충하는 것이 기본이에요. 나는 몸 속의 쇠가루를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뜸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접 구는 피부에 인위적인 화상을 만들고 고름을 생기게 해 백혈구의 생성을 촉진시키는 것이에요. 고름은 불로 만든 단백질인 셈이지요."

뜸 자리에선 부작용이 생기지 않는다. 단지 화상의 흔적만 남을 뿐이다. 침 자리는 그것마저 남지 않는다. 하나의 경혈에 침을 꽂았을 때 파괴되는 세포는 약 20개 정도. 그러나 5분만 지나면 모두 원상태로 회복된다는 것이다. 부작용이나 세포 파괴에 대한 우려는 기우일 뿐이라고 말한다.

"현재 사용하는 침이나 뜸으론 부작용이 생길래야 생길 수 없어요. 침뜸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마구잡이로 시술하면 모를까. 옛날에 아주 굵은 침을 어설프게 사용하다 뇌출혈이 생기거나 신경이 끊어지는 일이 있었지만 지금은 달라요. "

현재 사용되는 침은 일회용이다. 한번 쓰면 무조건 버려야 한다. 길이의 차이는 있지만 굵기는 대부분 머리카락 정도다.

뜸은 말린 쑥을 경혈에 붙인 뒤 향불로 불을 붙여 태우는 것이다. 쑥은 예로부터 '온경산한 온경통맥(溫經散寒 溫經通脈)'의 효능이 있다고 했다. 경락을 따뜻하게 하여 찬 기운을 흩어지게 하고, 맥을 소통시킨다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소우주다. 365개의 경혈이 경락으로 이어져 있다.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양기를 북돋우고, 기의 유주를 원활하게 만들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침뜸을 시술하려면 먼저 경혈과 경락에 대해 익히는 것은 물론 해부학과 병리학 등을 두루 배워야 한다.

"특히 뜸은 병의 유무와 관계없이 오장육부를 튼튼하게 만들 수 있는 전통 요법입니다. 예를 들어 '(족)삼리'라는 혈에 뜸을 뜨면 하체의 운동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피로도를 크게 줄일 수 있어요. 등산을 하거나 장시간 걸어야 하는 여행길에 오르기 전에 삼리에 뜸을 뜬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큰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 현실에서 증명되고 있어요."

의료 시설이 변변치 못하던 시절, 급체로 고생하거나 발목을 접질리거나 뇌출혈 등으로 쓰러지면 침뜸을 아는 동네 어르신들이 응급처치를 하곤 했다. 그렇게 전통은 이어졌다.

선친으로부터 침뜸을 익힌 구당은 1993년부터 본격적으로 침뜸을 가르쳤다. 그동안 다양한 직업을 가진 6,000여명이 구당과 함께 침뜸을 익혔고, '뜸사랑 봉사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뜸 요법으로 폐암이나 간암 치료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제자가 있는가 하면, 후천성 면역 결핍증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면역력을 키워주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는 이들도 있다.

구당의 가르침대로 '배워서 남 주자'를 실천하고 있다.

프로골퍼 김미현, 유도선수 이원희, 수영선수 박태환 등 스포츠 스타들이 구당에게 시술 받으면서 침뜸이 널리 알려졌다.

"한번은 소설을 쓰시는 조정래 선생이 어깨가 아파 글을 쓰지 못할 지경이라고 하소연했어요. 그래 간단한 시술을 해줬더니 통증이 사라졌다며 아주 고마워 하더라구요. 기가 통했나봐요."

한국정통침구학회 김남수 회장은 침뜸 요법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한결같이 이야기한다. /스포츠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