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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재(뜸사랑 13기 고급과정) 임상보고

이성재

2003.03.19 00:00:00 수

얼마 전에 中風으로 돌아가신 할머니가 한 분 계셨다. 침뜸으로 오그라진 손목이 펴지고 소화장애가 완화되
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분은 뜸을 유난히 뜨거워 하셔서 더 작게 더 부드럽게 만들고 장수도 적게 하였다.
하지만 친척 중에서 ?완치되지 않을 병이니 얼른 돌아가시는 게 좋겠다?고 하는 말을 듣고는 치료를 강권할
수 없었다. 부끄럽지만 나 스스로도 완치를 기대하지 못했거니와 대소변 받아내는 상황에서 피차 고통의 시
간만 연장되는 게 아닌가 하는 심정을 일면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할머니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쉽고 죄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한번은 동생 시어머니께서 감기로 코가 꽉 막히고 춥다고 하셨다. 나는 감기초기에는 大椎, 風門에 다장의
뜸을 뜨는 것이 최고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그분은 당뇨가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화농성 체질은 아니라고
하셔서 5~7장 단위로 약 30장씩 뜸했다. 그러자 바로 코가 시원하게 뚫린다고 하시더니 많이 고생하지 않고
금방 감기를 떠나 보내셨다. 질병을 혐오하고 죽여서 승부를 보려면 한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면 삿된 기운이 거할 수 없으니 스스로 떠나가는 것이 아닐까?

지난가을, 이웃의 아주머니께서 허리와 다리가 너무 아파 농번기임에도 일을 할 수 없다고 하셨다. 겨울
한 철 빼고는 밭에서 그 긴 여름해 까지 아껴가며 일을 하시니 탈이 나지 않을 수가 없으리라. 허리와 다
리를 보니 대두알 만한 뜸자국이 가득했다. 그분은 많이 아플 때마다 찾아가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너무 바빠 시간을 버리고 시내까지 갈 수가 없었던 차에 내가 침뜸을 배운다고 하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부탁을 해 본 것이라고 했다. 압진을 해 보니 허리뿐 아니라 흉추 4,5,6번에 강한 압
통을 호소했다. 손에서 연장이 떨어질 날이 없으니 등골이 성할 리가 없는 것이다. 무극보양뜸 자리에 압통
점, 腎兪와 腰椎 3,4,5번, 上와 次　, 그리고 앞쪽에 天樞와 太巨에 침뜸하고 環跳 근처 압통이 심한 곳에
深刺하고 뜸했다. 무릎은 내,외슬안과 압통점에 침뜸하고 인근의 혈에도 자침하였다. 아주머니는 뜸봉의 크
기가 작아 미덥지가 않은 듯 더 크게 떠 달라고 하셨지만 그 정도 크기면 충분하다고 자신있게 말씀 드렸
다. 과연 다음날 몸이 너무나 가볍다면서 간밤에는 아프지 않은 것이 하도 신기해 마당에 나와 걸어도 보고
서성이셨다는 것이다. 그 후에도 몇 차례 치료를 해 드렸는데 아주 좋아졌다며 기뻐하셨다.

이웃에 또 한 분, 수년 전까지 이상하리 만치 여러 차례 교통사고 등으로 몸이 많이 상하신 아주머니가 계
신다. 그 분은 특히 腰痛과 오른쪽 다리의 감각 마비로 고생하고 계신데 뚱뚱하신데다가 원래 오른손잡이지만
상완골이 부서져서 아래위를 절단한 채 살만 봉합해 놓아 왼손으로 생활하려니 불편함이 말이 아니다. 오랜
병원생활에다가 침도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맞아 보았고 약도 수없이 먹었다고 하셨다. 정말 침은 내가 그분
에게서 배워야 할 정도로 별 희한한 침을 다 맞아 보신 듯 했다. 약도 민간요법 책을 내도 될 만큼 많이 알
고 계셔서 주눅이 들 정도였다. 무극보양뜸 자리와 요통에 쓰이는 혈자리에 침하고 뜸자리를 잡아 드렸더니
너무나 열심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뜨셨다. 뜸을 뜨면 우선 뜸자리가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
침상만 물리면 아저씨가 만사 제쳐두고 뜸을 떠 주시는데 각 뜸자리마다 5장씩 뜨는데 만도 1시간 반이 걸
린다고 했다. 칠순이 넘으신 연세에 잘 보이지도 않는 쑥봉을 만들어 날마다 뜸을 떠 주는 마음이 참으로 아
름답고 고마웠다. 지금까지 반년이 넘도록 매일 떠 주시는 아저씨 덕분에 허리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신다.
아직까지도 힘이 없고 오래 섰거나 걷지는 못하지만 전에는 밥솥에서 밥 두 공기를 연속 뜨지 못할 정도로
허리가 아프고 똑바로 서질 못했는데 이젠 간단한 설거지까지는 크게 힘 안들이고 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다리의 감각마비는 그대로인데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면서 답답해하신다. 나도 아는 게 없으
니 답답하긴 마찬가지이다. 앞으로 공부하면서 고민하고 풀어야 할 숙제인 셈이다.

별들도 달님 곁으로 바싹바싹 다가서는 추운 밤, 山河는 종아리가 빠지게 내린 눈을 이불 삼아 고요히 잠들
었다. 조카 녀석들도 이제야 잠이 들었는지 조용하다.
큰 아이는 비교적 잘 먹고 잘 자서 큰 힘 안들이고 키웠지만 작은 아이 진영이는 감기 콧물을 달고 있고 잘
먹지도 않고 보채기 일쑤여서 동생이 항상 힘들어 했다. 하지만 지금은 먹기도 잘하고 잘 노는데 동생은 뜸
덕분이라고 하며 예전엔 아이들이 아프면 병원갈 채비 하느라 바빴는데 요즘은 집에 오고 싶다고 한다. 지난
여름까지 진영이는 한번에 100ml를 다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보통 80ml 정도를 먹는데 그날도 설사하고
먹지를 못하기에 中脘에 처음으로 뜸을 떠 주었다. 그런데 약 20분쯤 지나서 분유를 먹이는데 태어나서 처
음으로 120ml를 한번에 먹은 것이다. 물론 우연일 수도 있는 일 이었다.
아이들의 병일수록 신중하게 살피고 가벼이 여겨서는 안된다. 하지만 또 대개 흔한 것이 열나고 토하고 설사
하고 못 먹는 것인데 아이들은 정말 침끝만 닿아도 즉효가 있다. 예를 들어 감기로 열날때는 耳尖을 사혈 하
는데 유아의 경우 굳이 瀉血針을 쓸 것도 없이 毫針만 사용해도 금방 열이 내린다. 거기에 胃腸과 脾臟, 膵臟
의 기능을 북돋는 中脘으로 氣血의 운행을 돕고 身柱나 肺兪에 침뜸하면 콧물도 잘 멎는다. 그리고 한가지
뜸쑥이 탈 때는 주위를 반드시 눌러주고 앞에서 얼러주며 주위를 끌어 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으면 아이
가 잘 놀란다.

침뜸이란 것이 쉽고도 어렵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쉽다함은 어지간한 지식만 있으면 효과를 보기가
어렵지 않기 때문이요, 어렵다 함은 금방 다 나을 듯 하면서도 完治를 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병이라는 것이 기계처럼 外傷에서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어서 마음과 습관을 살피는 唯心論的 접근도 꼭 필
요한 것이라 여겨진다. 또 누구나 알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게 바로 지속적으로 끈기 있게 치료하는 것이
며 더 어려운 것은 永劫의 歲月 속에서 지금 우리는 새벽이슬처럼 잠깐 빛나고 있을 뿐임을 아는 것이다.

森羅萬象生命의 있고 없음을 따져 무엇할까
생명이 있대봐야 돌들에 의지해 물을 건너며
한낱 문창호지도 생명을 보듬지 않는가
눈에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모두들 생명의 탈을 뒤집어쓰기도 하고 벗기도 하는 것
또 서로가 근원 되고 열매되고 무덤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