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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돌팔이의 경험담 - 이재영(법무법인 부산) 1

관리자

2003.03.19 00:00:00 수

* 이 글은 부산지방변호사 사무직원회/노동조합에서 발행하는 <우리소식> 29호에 실린 글입니다.

- 어느 돌팔이의 경험담 -

이재영(법무법인 부산)

1. 최근 평소 존경하는 우리 주위의 사무장 한 분이 병이 드셨다. 찾아 가 뵈었더니 구안와사가 온 것이다. 양의
학적으로 표현하면 말초성 안면신경마비 증세다. 기력이 많이 손상되었고 평소에 짱짱하던 목소리도 허스키로
변했다. 마음도 많이 약해져서 갑자기 노인네가 되어버린 것 같다. 한의원에 다니면서 침을 맞는다고 했다. 배에
큰 뜸을 뜨고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약도 드신단다. 사람은 어찌되었던 건강하고 볼 일이다. 병증이 서서히 잡혀
가고 있다고 하니 다행스럽다. 다시 한 번 생활과 건강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2. 몇 년 전 수지침 열풍이 한참 불 때 2박 3일의 전교조수련회에 따라 갔다가 몇시간 수지침 교육을 받았다. 낮
에 더울 때는 놀고 밤이 이슥해져 술시가 되면 어김없이 한 잔 하곤 하여 수업중에는 주로 졸았지만 어쨌던 배우
기는 배웠다. 그런데 배운 내용을 써 먹으려니 누가 나를 믿고 손을 내어 줄 것인가? 저녁에 집에 들어와서 치료
대상자를 물색했다. 마침 장모님이 환자였다. 다래끼가 난 눈을 오랫동안 그냥 참고 놔 뒀더니 눈꺼풀 밑에 조그
마한 혹 덩어리가 생겨있었다. 안과에서는 간단한 수술로 제거해야한다고 했다. 이렇게 어려운 것은 아직 배우
지 않았는데.... 행여나하는 마음으로 나를 지켜 보는 가족들의 기대를 저 버릴 수는 없었다. 일단 손바닥을 펴 놓
고 이리 저리 몇군데를 시술하였다. 30분쯤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에 소주 한 잔 차려 오라니 제까닥 대령이
다. 거나하게 한 잔하고 수지침을 거둬들인 후 푹 잤다. 다음날 아침 조마조마했다. '좀 어떻습니까?''야야, 덩어
리가 반으로 줄었다' 나는 당여한 일을 보는 듯 태도를 취하고 다시 같은 자리에 자침 한 후 집사람에게 30분 있
다가 발침하라고 지시하고 출근을 하였다. 저녁에 와서 장모님께 '좀 어떻습니까'하고 물어 보기도 전에 혹덩이
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야단이 났다. 곧 이어 환생한 화타를 위한 주연이 베풀어졌다. 그 후 나는 집안의 주치의
로 인정을 받았고 집사람은 아이들 병원에 데려 가기 전에 반드시 나에게 먼저 수지침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세
월이 가면서 침빨이 잘 받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응급처방으로 즉각적인 효과는 보는데 치료는 잘 되지 않는
것이었다. 가족들은 내 사정도 모르고 아프기만 하면 손부터 내미는 것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싸 매도 넘지 못
할 벽이 가로 막혀 있는 것 같았다.

3. 얼마전 침(針)과 뜸(灸)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 수지침의 근본적인 치료효과에 대한 의문을 풀고 싶었던 차에
민족의학, 민간의술에 관심을 갖고 있는 판사선배의 소개로 직접 침구로 치료를 하시는 분의 강의를 들을 수 있
었다.
강의하시는 선생님의 스승은 전신의 살이 옷에 묻어 날 정도의 중화상을 입은 환자를 침으로 상처 하나 없이 낫
게 하신 분이라 했다. 공부는 재미있었다. 마침 TV에서 '허준'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던 때라 드라마 내용과 공
부내용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감칠맛을 한결 더했다. 남녀관계의 은유법으로만 사용되던 '음양론'이 생명의 총체
적인 질서 아니 우주적인 운행질서 전반에 걸쳐 적용되고 있음을 확인했을 때의 희열이란...... 동양의학서라고
읽어 본 것이라고는 '소녀경(素女經)' 정도가 전부였던 내가 한의학의 기초이론, 장부학, 경락이론, 맥진법등을
접했을 때의 즐거움이란 필설로 불가할 지경이었다. 수업이 월, 목, 토요일에 진행되는 까닭에 평소 그렇게 즐기
던 바둑이나 낚시는 해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점차 공부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학생들은 서로의 몸을 짚어 보면
서 여기가 수태음폐경(手太陰肺經)의 소상(少商)자리이고, 저기가 족양명위경(足陽明胃經)의 족삼리(足三里)라
고 확인해 나가기 시작했다. 코피가 멈추지 않는 경우 배꼽 오른편 아랫쪽의 기충(氣衝)에 사혈을 하고, 여름철
밀폐된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경우 에어컨병을 방지하려면 폐유(肺兪) 고황(膏　0에 뜸을 뜨는 것이 좋으
며, 여성의 젖이 붓고 아픈데 만약(萬藥)이 듣지 않을 때 무릎 아랫쪽의 족삼리(足三里)에 깊게 유침하면 특효라
는 것을 배웠다. 몸의 각 종 경락(경락)과 기운의 오행에 따른 상생상극을 배우고 여러 가지 진단법과 그 처방을
연구 해 가면서 진실로 과학적이고 근본치료를 할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