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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침뜸의 효능을 알리는 씨앗을 뿌렸다...

장영수(47차 중급반)

2004.07.15 00:00:00 목

저는 올 2월 47차 중급반 수료생으로 지난 6월 경험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저희 가족은 가장인 남편의 미국 본사 발령으로 이 달 말 출국을 앞두었는데 지난 5월 말부터 3주 동안 이주 전에 답사의 의미로 방문을 하여 이런저런 일을 보고 왔습니다.

그 기간 중 남편의 부하 직원이 손가락 염증을 호소하여 아시혈에 침을 놓아 간단히 고쳐준 일이 있는데 옆 숙소에 묵고 있는 "쌕"이라는 60대 미국인 아저씨가 그 이야기를 들었던 모양입니다.

쌕 아저씨는 본사 엔지니어로 남편이 회사에 막 입사했을 때 트레이닝을 담당했던 분인데 2주 반 전쯤 발목을 접질러 걷기도 힘이 들었답니다. 머리털 나고 침이란 건 구경도 한 적이 없는 쌕 아저씨는 발목의 통증이 얼마나 심했는지 한 번 보지도 못한 동양에서 온 쬐그만 여자에게 자신의 괴로움을 호소하며 기꺼이 침을 맞겠다며 발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탁자 위에 올려진 쌕 아저씨의 발은 발가락 위부터 뻘겋게 퉁퉁 부어 발목의 경계가 어딘지도 모를 지경이었으며 그동안 슬리퍼를 끌 때도 발가락에만 슬쩍 걸고 100킬로가 넘는 몸을 운신 했다고 했습니다.

퉁퉁 부은 발등은 손이 닿지 않아도 후끈한 열이 전해졌는데 이제 갓 중급을 마쳐 환자 경험도 없는 이 사람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침과 뜸에 부작용이 없음은 진작부터 신뢰하는지라 쉼 호흡 한 번 크게 하고는 심하게 부은 부분 위주로 침을 놓기 시작했습니다.

식빵처럼 부풀어 어디에 어느 혈이 있는지 찾기도 힘든 쌕 아저씨의 발. 복숭아 뼈도 손으로 더듬어 단단히 닿아야 거기구나 할 정도였습니다. 부은 부위와 정도가 너무 심해 쌕 아저씨의 발등에 꽂은 침은 10개가 훌쩍 넘어가 그야말로 고슴도치의 형상이었습니다.

그렇게 30분을 두었다가 발침을 하니 놀랍게도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3분의 2정도의 붓기와 열이 빠졌습니다. 눈이 휘둥그레 커진 쌕 아저씨를 보며 저도 그간의 걱정이 가시고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발을 바닥에 딛고 슬리퍼를 신어본 쌕 아저씨의 얼굴에 활짝 웃음이 번졌습니다. 발가락에만 간신히 걸쳐졌던 슬리퍼에 발등이 쑥 들어갔던 겁니다. 쌕 아저씨는 걸어보고 만져보며 통증도 많이 줄고 열도 많이 가셨다며 발침해 둔 침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습니다.

병원을 가도 딱히 방도가 없고 그간 회사 업무가 바빠 쉬지도 못하고 얼음찜질만 했다는 쌕 아저씨는 다음 날 아침에도 자신을 치료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쑥 꺼진 쌕 아저씨의 발등을 보며 자신도 붙고 흐뭇한 저는 기꺼이 그러겠노라 약속을 했지요.

이튿날 약속대로 옆 숙소로 갔더니 쌕 아저씨는 벌써 현관문을 열어 놓고는 소파에 앉아 저를 보자 아주 반가워했습니다.

저는 지난 밤 전화통화로 받은 구당 선생님의 조언을 떠올리며 이제서야 드러난 쌕 아저씨의 복숭아뼈 아래 구허를 좀 깊게 자침하고 삼음교와 현종, 양릉천에도 침을 놓았습니다. 30분 후 다시 걸어보던 쌕 아저씨는 매우 만족하며 한결 더 나아진 것 같다고 하더니 1년 전 무릎관절 수술을 했는데 거기도 시원치 않다며 방법이 없겠느냐 했습니다.

해서 그런 질환은 뜸이 더 유용하다 했더니 망설임도 없이 이따 저녁 때 퇴근하면 뜸도 좀 해줄 것을 부탁하겠지요. 쌕 아저씨는 어느 새 침에 단단히 매료가 된 듯 보였습니다.

그 날 저녁 챙겨간 뜸으로 양쪽 무릎 내슬안 외슬안에 침과 뜸을 함께 하고 발목도 전과 같이 치료를 진행하니 쌕 아저씨가 슬그머니 말을 걸었습니다. “미국에 오면 여기에 침술원을 개업하는 게 어떠냐...” 고. 하하~ 사실 발목 접질러진 것은 초기에만 침하면 그 날로 거뜬한 것을 2주 넘게 고생하며 악화된 환부를 보며 초조했던 쌕 아저씨에겐 자신의 발이 몇 번 맞은 침으로 원래대로 회복이 되는 것이 보통 경이로운 일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래서 "내 실력은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이제 중급을 마쳤을 뿐이며 고급 과정을 밟는 사람이나 마친 사람은 나보다 훨씬 월등하며 이들은 순순한 마음으로 봉사를 주 목적으로 하고 있다." 답을 했더니 또 한 번 감탄을 하며 한국에 돌아가 다시 올 때 자신이 쓸 뜸과 향을 꼭 좀 부탁하겠노라 당부를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침을 맞은 쌕 아저씨는 기회가 있으면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자신의 아내도 한 번 봐주었으면 좋겠다며 치료비 대신 선물을 보내겠다며 극구 사양하는 저희집의 주소를 받아내더니 자신의 뺨을 제 뺨에 부비며 깊은 포옹으로 감사를 표했습니다.

어딜 가든 아픈 사람은 있고 아픈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들게 마련입니다. 저는 이번 미국 방문에서 그 절실한 사람들에게 긴요히 쓰임이 되었다는 사실에 마음 뿌듯하고 내가 이 침을 배우길 얼마나 잘하고 다행스러운 일인가.. 새삼 실감을 했습니다.

더불어 쌕 아저씨를 통해 이 넓은 땅 미국에도 침과 뜸의 효능을 알리는 씨앗 하나를 심은 듯한 마음이 들어 기쁘고 또 기뻤습니다. 뜸사랑에서 배출된 수많은 붕어빵들이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소중한 인술을 펼칠 그 날.

우리는 꼭 그 날을 맞으리라 소망하고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