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동일한 토대 위에서 비슷하게 발전해 온 중국과 일본, 북한의 침구시술에도 한국과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국과 일본, 북한에는 침구시술권과 관련된 분쟁이 발생하지 않는다.

일본에는 한의사 제도가 없다. 한약은 식품으로 취급, 몸에 좋은 차를 개발하여 소비자들이 값싸고 손쉽게 구입할 수 있게 하고 있으며 침술(鍼術)과 구술(灸術)을 비롯한 전통의학 전반을 동양요법(東洋療法) 제도를 통해 계승, 제도권 내로 흡수해 왔다. 그 결과 2001년 4월 현재 일본에는 23만 명에 이르는 침사(鍼師) 및 구사(灸師)가 배출되어 있으며 전국 112개 침구사 전문 양성기관을 통해 매년 침사와 구사를 각각 2500여명씩 계속 배출하고 있다.
또한 일본에는 의사의 침구시술을 보호, 권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의사는 누구나 침구술 보수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정부가 정한 기준에 따라 일정 기간의 교육을 수료한 뒤에는 자유롭게 시술이 가능하다.

중국 국가중의약관리국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중의약관리국 교육방침」이란 자료에 의하면, 중국의 전통의학제도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개방적이며 다원화되어 있다. 중의학은 중의학전공, 침구학전공, 추나학전공 등 10여 개 세부 전공분야로 나뉘어져 있으며 민족의사제도라 하여 몽고 전문의사, 티베트 전문의사 등의 제도를 두고 있다.
이처럼 다원화되어 있는 중국 의료시장에서 현재 중국에서 침구를 시술할 수 있는 인력은 침구전공 중의사와 침구사, 중서의(中西醫) 등이다. 물론 련대의학을 전공한 의사(중국에서는 이를 ‘서의'라고 함)가 침구시술을 하는 것은 전혀 블법이 아니다. 중의사든 서의든 모든 의사는 환자 치료를 위해 어떤 의술이든 쓸 수 있게 되어 있다.
중서의제도는 전통의학과 현대의학의 결합을 시도하는 중국 정부의 의도가 드러나는 장치로서, 일반의대를 졸업했거나 현대의학을 전공한 의사 가운데 3년 이상의 침구술 교육과정을 마친 자에 한해 중서의 자격을 주고 있다. 중국은 중서의가 매우 중요한 인적 자원일 뿐 아니라 중국 의학 발전의 중심이 되고 있다고 믿는다. 2000년 현재 중국에는 1만3천 명 이상의 중서의가 활동 중이다.

북한에서 우리민족 고유의 전통의학은 현대의학에 대한 보완대체의학이 아니라 의료의 한 기둥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일찍부터 이 점을 강조해 동(東)의학이라고 불러왔다. 그러다가 1990년대 들어 중의학의 상대적 개념이 아닌 동의학 대신 정통성을 강조해 고려의학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 동안 북한은 고려의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나라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그 중요성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고려의학과 신의학의 배합과 협진'은 북한이 초기부터 주창해 온 원칙이다. 대다수의 신의학병원 안에 동의과가 따로 설치되어 있으며 이곳 동의과에서는 신의학으로 고치지 못한 질병을 맡아 치료한다.
신의사라고 해도 간단한 침구혈 자리는 알고 있어 유사시에 손·발가락의 십선혈을 따거나 사관에 침을 놓을 수 있다. 2001년, 북한의 과학원 산하 4대 연구기관의 하나인 조선 고려의학과학원 침구연구소 허익근 소장은 “북에서는 질병의 60% 이상을 침과 뜸으로 치료한다”고 말했다.